한옥 담장
보는 행위는 말하는 행위를 앞선다. 무엇이 어떻다고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보았다.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 우리는 우리가 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우리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 그 욕구가 크게는 권력을 나타내는 수단일 수도 있고 작게는 나를 표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욕구를 해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TV 집을 구하는 프로에서 한 연예인이 '이 집은 뷰(view)가 좋다' '이 집은 뷰(view)가 좋지 않다'를 계속 언급하는 것이 들렸다. 무슨 소린가 하며 자세히 보니 집을 소개하면서 이 집의 전망이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는 말이었다. 우리 세대에는 집을 살 때 뷰(view)를 신경 썼다는 기억은 없는데 확실히 주거환경도 발전해서 뷰(view)까지 고려하며 집을 사는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집을 고를 때 뷰(view)에 매달렸나? 주거가 아파트로 변하면서 동일한 평수 거의 대동소이한 구조에서 차별화되는 것이 층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집을 사고팔 때 뷰(view)는 집의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여행지를 정할 때도 뷰(view)는 선택 기준이 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뷰(view)라는 단어가 일상화되었다. 그럼 이 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뷰(view)란 무엇인가?
뷰(view)는 경관, 경치, 전경, 시야, 관점 등을 뜻하는 영어다. 전문 용어로 경관 가운데 파노라믹한 경관을 말한다. 파노라믹 경관은 보통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관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뷰에 집착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유 중에 하나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고의 발달로 시각적으로도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남에게 보이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느 방면으로든 나의 방식대로 남이 나를 봐주기 바란다.
하지만 요즘 주거환경에서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중 '보는 것'이 전부다. 남에게 보일 기회가 거의 없다.(때문에 집을 가격으로만 평가하게 되었다) 뷰(view)를 중시 여기는 것도 이러한 풍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아파트가 주거형태로 자리하면서 밖에서 내가 사는 집을 바라보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내 집은 옆집 아랫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내 집을 찾으려면 아래서부터 몇 층인지 헤아려서 '저기 저 커튼이 걸려 있는 집이 우리 집이지.' 하는 정도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은 창을 통한 밖의 풍광이다.
뷰(view)는 위층으로 갈수록 잘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최고의 뷰는 산 정상이다. 아파트의 높은 층은 마치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사실 뷰(view)를 따지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내 시선을 무언가 가로막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느 집이나 뷰(view)를 즐길 수는 없다. 우리 주거 환경에서 뷰가 좋은 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어떤가? 친구를 이태원에서 만났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점심도 먹고 이태원 골목길을 걸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참사를 겪은 이태원이 다시 생기를 찾는 거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원동은 가파른 골목이 남산까지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걸어간 길이 고급 주택가였다. 굳게 닫혀있는 멋진 대문, 높은 담장, 담장 너머 보이는 비싼 상록수들.... 물론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분위기였다. 언덕길, 높은 담장, 담장 위에 보이는 잘 가꾸어진 소나무... 생각해 보니 성북동의 어느 동네가 생각났다. 이태원과 성북동의 골목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모두 높은 담장이었다.
같은 언덕길을 걸어도 재미있는 동네가 있는데...
경사면에 핀 야생화, 담장을 덮는 장미, 담장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넓은 잔디와 각양각색은 꽃들.
이런 동네의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골목을 걸으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나의 뷰(view)는 방해받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읽는 거 같았다.
한옥은 담장에서 이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하고 있다.
담장은 안과 밖을 구분하거나 하나의 공간을 보다 작은 공간으로 구획 짓는 공간을 분할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다. 담장은 공간을 분할하기 위해 설치하지만 그 어떤 요소보다 시각적인 구조물이다. 공간분할의 기능 못지않게 우리 전통담장은 의장적 가치를 갖는다. 담장의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넓은 평면은 외부 공간을 둘러치는 병풍과 같다.
담장은 쌓은 재료나 쌓는 기법에 따라 이 병풍의 그림은 다양하게 바뀐다.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건물만큼 담장에 신경을 썼다. 담장에 집주인의 재력 취향 신분을 담았다. 한옥 담장의 재료는 대부분 흙이나 돌 전돌과 같은 자연재료다. 특별할 것도 없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재료지만 그 표현은 무궁무진하다.
흙이라는 소박한 재료를 갖고 흙을 다져 쌓는 판축법의 담장, 진흙에 짚을 섞은 토담, 흙과 돌을 섞은 토석담, 흙을 구운 벽돌로 각종 문양을 새긴 화려한 화초담을 볼 수 있다. 돌을 재료로는 집 주위 산이나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석을 생긴 모습대로 켜켜이 쌓아 올린 돌담, 궁궐이나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사괴석담, 도자기 문양에서 따온 빙열무늬의 문석대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수키와를 포개거나 맞물려서 일반 담장처럼 안팎이 보이도록 쌓은 영롱담, 기와와 흙을 한 층 한 층씩 쌓은 외적담.... 담장의 모습은 무수히 많다.
담장은 높이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담장의 높이가 30센티 정도라면 단순히 경계를 의미하고 제주도 담장처럼 1미터 정도가 되면 영역표시가 확실하므로 이곳에 들어올 때는 문을 통해 들어오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담장이 1.2미터에서 1.5미터라면 절묘한 높이다. 사람의 눈높이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사이에 뭔가 교감이 오갈 수 있는 높이다. 안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어른인지 어린이인지 키가 큰 사람인지 작은 사람인지 인지하기 위해 신경이 쓰인다. 반면에 밖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증이 일어나게 하는 높이다.
여름휴가를 손녀들과 보내면서 어느 날 몰에 갔다가 앞에 화려한 그림이 있는 티셔츠 하나를 사 입었다. 그 옷을 입자마자 큰 손녀가 물었다. "할머니 로큰롤을 좋아하세요?" "웬 로큰롤?" 자세히 보니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 아래 작은 "로큰롤"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패션은 메시지다. 손녀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패션뿐이겠는가?
외국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퀴어의 무지개 깃발, '** 축구팀을 좋아해요'라는 표시로 걸려 있는 깃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화려한 트리를 거실에 만들어 놓고 밤새 불을 켜 놓는 것, 집 가장자리를 전구로 장식해 놓는 것.... 모두 보이기 위한 메시지다.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든 타인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중국의 전통가옥은 밖에서는 담장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담장보다 훨씬 높고 견고하다. 복건성에 있는 '토루'와 같은 가옥은 담장을 넘어 성벽을 쌓아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차단하였다. 적으로부터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담장이다.
우리 선조들의 담장은 그리 높지 않았다. 구릉을 이용해서 성벽 또한 최소한으로 쌓았다. 우리의 담장은 결코 단절의 의미가 될 수 없었다. 살고 있는 집에 메시지를 담는 것은 곧 소통이다. 한옥의 담장은 하나의 그림이며 동시에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메시지였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절묘한 만남.
한옥의 담장에는 메시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