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사상과 자연관
딸네집에 갔다가 책장에서 자연을 주제로 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표지가 예뻤다.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책이다. 탐스러운 베리 열매가 달린 가지에 베리 열매를 입에 문 새 그림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이라 쓴 소제목으로 보아 이 책이 식물학자가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장을 넘기니 저자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저자는 식물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에 대해 쓴 그녀의 세 번째 책이다.
글은 자연의 풍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생산은 국가나 시장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생산이 사회구조를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자연의 생산방식을 탐구해야 한다. 자연의 생산방식이란 서로 돕는 것이다. 서로 돌보는 자연경제에서 흐름의 원천은 태양이고 태양은 인간의 사랑이다.'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글은 문장이 짧고 간결하다. 책에서 여러 동물을 '사람'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인간 사람'이고 인간이 아닌 동물은 '인간 아닌 사람'으로, 인간은 호모사피엔스를 가리키고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모든 존재를 를 가리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다른 생물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간과 사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껴보기 위해서란다.
새와 베리의 이름에 님을 붙여 의인화하였다. 애기여새님 개똥지빠귀님 파랑새님... 서비스베리 님 새스커툰님 준베리님 섀드부시님 섀드블로님 슈거플럼님 사비스님... 사물의 이름에 '님'을 붙임으로써 자연의 풍요로움 자연의 아름다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감사함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을 결합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그의 시도는 사람들 사이에 '선물'과 '나눔', '존중'과 '호혜'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불러온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로빈 월 키머러는 식물생태학자이며 작가이며 교수다. 그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은 물론 자연의 대상에 까지 존중과 감사를 표하고 있다.
선조들의 사상에는 이미 자연에 대한 존중이 있다.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자리한 풍수지리적 자연관은 자연환경(산, 물, 방위)과 인간의 운명 생활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풍수사상은 땅 속에 흐르는 기운을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산 물 방위 등 자연환경이 인간의 건강 재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풍수지리적 사고는 우리가 사는 집터 도시 묘지 등 생활공간의 배치에 적용하였다. 풍수지리적 사고의 본질을 왜곡한 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때 미신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풍수사상의 본질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전통적 세계관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도가철학 또한 선조들의 자연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가철학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강조하였다. 도가철학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은 인위적인 작위를 버리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는 삶의 태도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연과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도가사상 역시 인간에서 벗어나 자연 중심의 세계관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으려 하였다.
조선은 유교정신을 국가의 기본으로 세워진 나라다. 유교적 자연관은 자연은 인간이 이용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존재로 보았다. 이는 천일합일() 사상에 잘 드러나고 있다. 유교는 자연의 변화와 순환을 인간 생활의 근본으로 삼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을 강조하였다. 자연은 인간의 도덕적 성장과 질서 유지에 중요하며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따라야 하는 것을 삶의 기반으로 여겼다. 조선시대 예술을 살펴보면 자연을 그린 산수화 사군자 등 예술작품에서 잘 나타나 있다. 도시계획 궁궐건축 정원의 축조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유교적 미덕으로 여겼다. 유교적 자연관 역시 인간과 자연이 하나임을 강조하며, 자연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였다.
이 밖에 도교적 세계관을 가진 신선사상은 한국의 단군신화 산악신앙 등과 융합되어 세속의 번뇌를 벗어나 선계에서 영생을 누리는 신선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불교의 자연관 역시 자연과 인간이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하고 변화하는 전체로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교의 자연관은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 상호 의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조화와 존중을 실천하는 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근현대 자연의 파괴는 너무나 심했다. 산업혁명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도시는 거대해지고 자동차가 도시를 활보한다. 공장에서는 매연을 내뿜는다. 과도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양이 기준 이상으로 증가했다. 산업화 도시화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대신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재앙을 초래했다.
발전이 도리어 지구를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지 않나 걱정하게 한다. 그것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나온 발전이었다. 자연을 인간이 이용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고가 필요하다. 다른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인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받았다. 자연의 고마움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 선조들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