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자연관

은일(隱逸)과 은둔(隱遁)

by 풀솜

우리의 선조들은 일반적으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이상으로 하였다.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며 자연의 순리에 인간의 생애를 대비시켜 인간의 생애 또한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을 자연과 조화로운 삶으로 여겼다.


우리 선조들에게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풍수지리 자연관이다. 풍수사상은 땅에 흐르는 기운에 따라 살면 복을 얻고 화를 피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자연환경이 인간의 건강 재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는 국가적으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짓는 일부터 개인적인 집터를 고르고 묘지를 정하는 일까지 선조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을 존중한다고 자연에 대한 관점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선비들의 자연에 대한 관점은 일반 백성과 차이가 있었다. 일반 백성들에게 자연은 직접 마주하는 일상이었다. 산에서 나무를 하고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는 일반 백성들은 자연을 아름다움이나 철학의 대상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울창한 삼림은 자신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만 갑자기 무서운 짐승이 나와 자신과 가족 또는 자신들이 키우는 가축을 해칠 수 있었다. 때문에 일반 백성은 자연에 대해 고마워하고 동경하면서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두려움을 느꼈다. 일반 백성에게 자연은 경외심을 갖은 동시에 두려운 대상이었다.


성리학은 주자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다. 조선은 신흥사대부 세력에 의해 성리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다. 나라를 세운 젊은 유학자들은 건국 초기 정치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사림과 훈구로 나뉘어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힘썼다. 이들은 경쟁하면서 점점 세력화되고 파벌로 발전하였다. 이를 붕당정치라고 한다. 조선의 역사는 붕당정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사회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조선의 선비다. 선비는 양반이었고 조선의 정치 경제 사상을 이끄는 지배계층이었다.


선비들은 자연을 피상적으로 봤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철학적인 이상세계로 바라봤다. 선비들은 문장을 짓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릴 때 주제는 거의 자연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중국 당송의 문학을 흠모했다. 당송의 문학을 이끌었던 이백이나 두보를 비롯한 팔대가 등의 작품은 도가적 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다. 조선의 문인들도 도가와 관련된 책을 즐겨 읽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무이구곡을 노래하고 소상팔경을 그렸다. 무이구곡이나 소상팔경은 중국의 자연이다. 그들이 직접 볼 수 없었던 자연에 대해 시를 짓고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자연히 자연을 관념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갈 수 없고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은 더 이상적인 세계였다. 중국의 자연을 동경하였던 조선의 선비들은 현실의 자연을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르네상스 대항해시대를 지나면서 세상은 급격히 변했다. 과학과 예술이 발달하였고 동서양 교류가 활발하였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문명은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실학사상이었다. 실학이 발달한 조선 중기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자연을 그린 그림이 진경산수화다.






은일(隱逸)과 은둔(隱遁)

은일(隱逸)과 은둔(隱遁)

조선이 성리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지만 노장사상 도교사상 신선사상 불교사상 등 중국의 여러 사상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선비들이 공부하는 교재는 거의 중국 문헌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특히 당송문학을 숭상하였다. 당송의 문학은 이백이나 두보를 비롯한 팔대가가 주도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도가적 사상과 관련이 깊었다. 조선조 문인들도 은연중 도가에 관한 책을 즐겨 읽고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선비들은 도가사상의 은일(隱逸)을 흠모하였다.


은일이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숨어 지내거나 그러한 사람을 가리킨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인위적 분별과 욕망을 내려놓을수록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욕심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 때 인간은 자연의 본성에 가까워지며 선해지고 완전한 존재가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자연의 본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하여 자연스러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태도다. 이러한 도가사상은 신선사상과 결합하여 선가적 양생법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은일은 자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무위의 삶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맞게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자연을 즐기는 것이다. 자연에 귀일 하는 생활태도가 단순히 자연을 벗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연과 나 물아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로 발전하였다.


은일이 적극적으로 자연에 귀의하는 것이라면 은둔은 타의적으로 자연에 귀의하는 것이다. 은둔은 현실 사회를 피하여 자연에 숨어 있으려는 것을 말한다. 은둔은 유교적 영향이 컸다. 조선선비들의 자연관에 영향을 준 도가적 사상이 은일이라면 은둔은 유가적 자연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는 자연의 변화와 순환을 인간 생활의 근본으로 삼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도덕적 성장과 질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삶의 기반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유교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하며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자연은 인간이 이용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유가사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이상으로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이다.


이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몇 가지 반응을 볼 수 있다. 가장 적극적인 태도는 이상을 관철하기 위해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방법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당쟁에 연루되어 고배를 들게 되고 더러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노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럴 경우 초야에 묻혀 안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상이 버리면 산수간에 들어간다" 즉 정치적으로 세력을 잃거나 세력에서 제거되면 자연 속으로 되돌아간다는 입장이다. 비록 강호와 자연을 노래하더라고 도가적 은일과는 구분되는 도피적 은둔이라 할 수 있다.


은일(隱逸)의 태도와 은둔(隱遁)은 외견상으로는 비슷하지만 내용상으로 그 근본은 전혀 다르다. 은둔(隱遁)은 현실도피하는 은일(隱逸)이라 할 수 있다.


대개는 현실참여와 현실은둔의 양 세계를 어정쩡하게 오가는 태도를 택했다. 즉 치국평천하를 도모하는 유가지만 자연완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쟁이 극심하던 시절, 정치에 초연하여 산수 자연에 소요하며 초세적 은일의 생활을 즐기는 문하가 많이 나왔다. 세상과 단절되는 자연에서의 삶은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된다. 살면서 분개 원한 애착에서 벗어나 고답적 생활을 하면서 조선의 선비들은 적극적으로 자연을 즐겼다. 우리는 이것을 초세적 은일이라고 한다.


은일이 되었든 은둔이 되었든 조선의 선비들은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했다. 조선 선비들의 필수 덕목인 시서화의 거의 모든 주제는 자연이다. 자연에 살며 자연을 노래하고 산수화를 그렸다. 자연은 그들의 꿈이었고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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