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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Apr 27. 2024

뚜벅이 규슈 북부 여행

역사여행의 계획과 실천

작은딸이 ‘다음 달이면 항공마일리지가 소멸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하는 말인 줄을 알지 못했다. 딸은 오는 3월 출산 예정이어서 여행을 갈 수 없다. 딸이 나에게 비행기표를 끊어 줄 터이니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마일리지로 끊을 수 있는 표는 일본여행 정도며 마일리지로 끊은 표는 엄마 아빠와 같이 직계에게만 양도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남편과의 일본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나는 총 네 번 일본여행을 했다. 나의 첫 일본여행은 지금부터 37년 전 교토를 중심으로 인근지역은 물론 도쿄까지 돌아봤으며 10년 전 다시 한번 같은 코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두 번의 여행은 모두 학술적인 답사여행이었고 5년 전 홋가이도 여행은 가족과의 자유여행이었고 다음은 5형제부부의 대마도 여행이었다. 


첫 여행은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으로 일정이 너무나도 빡빡했다. 특히 학술답사여서 공식적인 일정을 소화하기도 힘들었다. 모두들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긴장했다. 일정이 끝나도 할 일은 많았다. 고국을 떠날 때 부탁받은 물건을 사기 위해 저녁이면 시내로 나갔다. 당시 일본은 가전제품 강국이었다. 공항에서는 일제 코끼리 밥솥을 하나씩 들고 들어오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고 일단 일본에 나가면 대부분 용돈을 아껴 워크멘이나 카메라 같은 가전제품 한 두 개씩 사 왔다. 


일본에 도착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긴자거리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었다. 당시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이었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선진국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석유파동으로 전등불 켜는 것조차 신경 쓰던 시절, 긴자거리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나에게 일본의 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당시 여행의 목적은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유적 답사였다. 일본 문화를 알고 그중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것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말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식민 지였었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고 일본의 경제력에 눌려 있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 문화를 알기 위해 여행을 한다면 교토를 여행하는 것이 좋다. 교토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주 같은 도시로 대표적인 역사도시라고 할 수 있다. 교토는 일본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 일본 근대 이전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유명한 사찰과 아름다운 일본의 전통정원 같은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첫 일본여행에서 교토 오사카 나라 도쿄를 둘러봤으며 두 번째 여행에서 교토에 다시 왔다.


관광지는 물론 일본 사람들도 가기 힘든 곳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학술답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 문화를 찾아내는 안목을 가지신 교수님들의 설명으로 매우 흥미로왔다. 가장 놀아운 것은 일본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보존과 관리였다. 40년 전 우리나라는 문화재 보존의 개념도 없었는데 미이 일본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관람인원과 관람시간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도 발전을 거듭하면서 문화재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고 보존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역사여행은 나의 여행방식의 모델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와의 관계를 살피는 것은 여행을 한결 풍요롭게 했다.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낯선 지역에서 지내야 하는 여행 자체가 힘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자유롭게 걷는 아직은 가능할 때 젊은 시절 했던 여행을 해 보고 싶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여행은 내가 생활하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자고 먹고 걷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자식의 최대 효도를 부모님께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이고 외국 나가 있는 자식이 있으면 성공한 삶으로 생각했다. 연말연시나 연휴기간이면 사람으로 인산인해인 인천공항의 모습을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몇 년을 해외여행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답답하게 생각했는데 지난가을부터 여행자유화의 분위기다. 특히 엔화의 약세와 가까워서 일본여행객이 지난달보다 배로 늘었다고 한다. 규슈에는 한국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아이들 모두 출가시키고 은퇴 후 여행하기에 지금이 황금시기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에서 무fl하지 않게 다녀오려 한다. 직접 예약하고 직접 찾아가는데 의의가 있다. 


역사적인 장소에 직접 가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이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당시 일어났던 사건사고가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사는 느낌이고 상상력이 끝없이 전개된다. 단순히 교과서에서 배웠던 사실을 그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아니면 당시 살았던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드라마나 영화가 흥미롭게 이해되고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결과물이 없더라고 이러한 역사 속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이번 여행 장소는 규슈로 정했다. 규슈는 일본 4개의 본섬 중 가장 아래 위치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깝다. 해류를 따라 흐르면 서해의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남해를 거쳐 규슈 북쪽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곳이 현해탄으로도 불리는 대한해협이다. 규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가깝고 음식이 맛있고 온천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비자가 면제되었고 엔화가 저렴해지면서 제주도 가는 것보다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규슈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관련이 많은 섬이다. 고조선 발해 가야 등 고대에는 청동기 문화와 벼농사를 전해준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전쟁의 전진기지였으며 정유재란 때 우리나라에서 잡혀온 도공들이 근세 일본 도자문화를 일으킨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잡혀간 노동자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규슈 북쪽에 있는 작은 섬에서 백제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는데 대신 나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한다. 역사는 유물이나 유적 기록으로 추정하는 상상력이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롭다.     

 

5박 6일 일정이며 후쿠오카 공항에서 내린다. 첫날 늦게 도착해서 후쿠오카의 한 호텔에서 묵고 다음날은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셋째 날 도자기 도시인 아마리로 이동할 것이다. 중간에 요시노 가리라는 청동기유적지를 둘러보고 셋째 날은 이마리에서 머물고 넷째 날 가라쯔로 이동하여 하루 묵으며 규슈 북쪽 해안을 둘러보고 다섯째 날 다시 후쿠오카로 이동해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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