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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Apr 29. 2024

친구 부부와 세 번째 여행

2024 남해여행

미국에 사는 친구 부부가 왔다.

우리 부부가 미국 여행할 때 두 번이나 신세를 진 친구다. 

함께 한국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 기회에 조금이나마 신세를 갚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여행지 선택에서 숙소 예약 이동 수단 등 내가 정하기로 했다.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에 신이 났다.      


친구는 결혼하면서 미국에 갔다. 이번 여행에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모두 좋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50년 이상 외국 생활을 한 친구의 남편이 남쪽바다는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남해로 결정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 우리는 마산에 살았다. 창원 진해에서 여수 목포까지  몇 번씩 가봤으니 우리 부부에게 이번 여행은 30년 전을 돌아보는 추억여행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은 통영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것과 남해 미조항에서 멸치회를 먹는 것을 제안했다. 나는 요즘 핫플레이스 여수 밤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통영 남해 여수로 결정했다. 통영에서는 케이블카와 유람선을 타고 남해에서는 보리암을 보고 미조항에서 멸치회를 먹고 여수로 넘어와 그 유명한 여수 밤바다를 보기로 했다.     




가평  >  통영


가평에서 출발해 중앙 고속도로를 탔다. 중앙고속도로는 춘천 안동 간 고속도로로 강원도 충북 경북의 산 사이로 달린다. 안동 강의를 다닐 때 자주 다니던 길이다. 우리는 친구 남편을 위해 안동을 잠시 들려 부용대를 보기로 했다. 안동은 한국적인 경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도시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하회마을 강 건너 언덕이다. 하회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만 부용대까지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부용대 아래는 서애 유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했던 옥연정사와 유성룡 선생의 형인 유운룡의 겸암정사가 있다.


 부용대 아래 겸암정사 옥연정사를 모두 둘러보면 좋겠지만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고 내려왔다.      

통영은 옛 충무다. 바닷가 오래된 도시로 바다와 산 사이가 넓지 않아 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다. 산을 접하고 있어 언덕이 많고 건물의 규모도 크지 않아 도시 전체가 아기자기했다. 숙소는 바닷가에 있었고 방에 들어서니 바다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일명 오션뷰(Ocen View)다. 숙소를 나와 도시를 돌아봤다. 동피랑 마을을 돌아보고 중앙시장에서 회를 먹었다. 피랑이란 절벽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동피랑 마을은 동쪽 끝 절벽마을이라는 뜻이다. 

          

다음 날 케이블카로 하늘에서 통영을 감상했다. 오후에는 한산도를 도는 여객선을 탔다. 여객선은 약 40분 후 장사도라는 섬에 도착했다. 2시간가량 장사도를 둘러봤다. 2005년부터 민간에 의해 정비되었다는데 지금도 공사하는 곳이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자연은 사람에 의해 가꾸어져야 한다. 편리하고 아름다운 장사도를 꿈꾸며 한산도를 돌아 부두로 돌아왔다. 섬들이 살포시 내려앉은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황사가 심해 아름다운 바다를 온전히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통영  >  남해

  

진주를 지나 사천에 짐을 풀고 삼천포에서 저녁을 먹었다. 30년 전 아이들 어렸을 때 처음 차를 사서 달리던 생각이 났다. 남해 가는 길에 옥천사 다솔사 율곡사 등 규모가 작은 절을 자주 찾았다. 기회가 있어 어쩌다 다시 가보면 내가 생각하던 옛 모습이 아닐 때가 많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세상도 변한다. 그 기억을 붙잡고 세상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다.     


보리암에 올랐다. 강화 석모도 보문사에서 서해바다를, 동해 낙산사에서 동해바다를, 남해 보리암에서 남해바다를 볼 수 있다. 각각의 바다는 모두 느낌이 다르다. 탁 트인 동해바다도 좋지만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아름다운 남해바다가 가장 좋다.      


언제나 그렇듯 절은 가는 길이 아름답다.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면서 땀도 나고 마음도 정화되어 기도는 가는 동안 끝나게 된다. 절에 도착해서 보는 탁 트인 바다는 그동안의 노고를 잊게 한다. 고통과 행복은 번갈아 온다. 고통이 먼저 오고 행복이 나중에 오는 것이 좋다. 행복을 먼저 느끼고 고통이 오면 그 고통이 더 힘들다. 절에 가는 길은 아름답지만 힘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자동차가 거의 끝까지 올라가니 마음을 풀 시간이 부족하다.      

미조항에서 점심을 먹었다. 8년 전 남편이 은퇴하던 해 이곳 미조항에 왔었다. 남해의 4월은 멸치가 많이 잡힌다. 남편은 미조항에서 멸치회무침 기억이 오래 남았는지 이번 여행의 일정에 꼭 넣기를 원했다. 전에 먹었던 음식점에 ‘매매’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옆집에서 식사를 하며 물으니 주인이 아파 문을 닫았다고 했다. 마치 아는 사람의 소식을 들은 듯 마음이 안 좋았다.     




남해  >  여수


남해에서 여수로 가는 길, 우리는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인 하동 평사리 마을에 들렀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코 하동의 섬진강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섬진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곱다’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산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의 화려함은 볼 수 없다. 섬진강은 단아하다. 하동의 섬진강길은 화려한 벚꽃이 필 때는 물론 벚꽃이 없어도 송림군락을 비롯해 연륜 있는 많은 나무들이 운전을 즐겁게 한다.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하동의 날씨다. 내리쬐는 햇빛과 공기는 겨울에도 따뜻하게 감돈다.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갔다. 최참판댁은 우리나라 남부 양반가옥이 잘 재현되어 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최참판댁에 기대어 사는 소작농을 비롯해 최참판댁의 일을 봐주는 사람들의 집이 초가로 재현되어 있다. 최참판은 언덕 아래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최참판의 집과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넓은 토지만으로도 당시 양반의 위상이 느껴진다. 시대상과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 간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풀어낸 박경리 작가를 존경한다.      

최참판댁 가는 길은 예전과 달리 가게가 많이 들어섰다.
최참판 양반댁을 중심으로 주변에 모여 사는 농민 하인의 가옥
양반가 솟을대문
한옥의 사랑채


한옥의 담장과 꽃밭, 화단 혹은 화오라고 한다.
최참판댁은 경상도 지방 양반의 가옥을 재현해 놓았다




이번 일정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여수로 향했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여수 산업단지 안을 지나가게 되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모습은 어마어마했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잘 살게 된 것은 이러한 산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돈과 환경을 바꾼 느낌이다. 석유화학단지이기 때문에 공기가 좋지 않았다. 관광이 아름답고 좋은 모습만을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여수 밤바다를 보기 위해 저녁 식사 후 시내로 나왔다. 이순신 광장 주변의 바다는 화려했다. 건물이며 다리며 밤에 운행하는 여객선까지 조명이 화려했다. 광장에서는 가수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밤바다를 보며 노래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여수 밤바다의 느낌을 한껏 느끼니 우리나라 가장 남쪽이 실감 났다. 다음날 친구부부를 기차로 보내고 이번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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