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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May 27. 2024

아이는 공간에서 자란다

집과 마을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지’     

내가 아이를 키울 때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는 마을이 키운다’     

아이는 혼자 키울 수 없다는 말이다.      

상반된 말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첫 번째 말의 의미는 아이가 돌보는 사람과의 애착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말의 의미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가까이 책임지고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엄마일 확률이 대부분이다. 만에 하나라도 엄마가 자식에게 소홀할까 옛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낳자마자 다른 사람이 키워도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 아이와의 애착 관계가 형성되고 정성을 들여 키우면 누가 키우던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애착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부모만큼 참고 기다려 주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여기서 엄마라고 했지만 실은 부모 모두의 일이며 이는 사람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봐야 한다.      


아이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순간순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떤 때는 어른들이 보기에 위험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비록 내 아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아이는 마을이 키워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아이를 키우는 공간은 집과 마을이다.    

  



생각해 보면 오천 년을 살았던 집과 마을은 참으로 이상적이었다. 그런데 50년도 되지 않아 우리는 왜 그렇게 급하게 버려야 했나?   

  

집은 사는 사람의 주체적인 정신이 온 집안을 감싸는 곳이어야 한다. 집은 더 이상 물질적인 삶에 허덕이는 기계적 인간을 수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신의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  

    

조상의 숨소리를 기억하는 땅에 지어진 우리의 집은 오래전부터 흘러 내려온 우리의 피가 다시 땅을 붉게 적셨다. 그 땅에 솟는 집은 굳건하게 자란 소나무처럼 사철 푸르되 하늘의 뜻대로 굽어진 한가한 여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의 숨소리를 기억하게 하는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나무와 흙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건축은 그 재료의 사용만으로도 환경친화적이며, 상생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의 목표는 이미지가 아니라 건물이 주는 메시지다. 건축은 결코 바라보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의 아름다움은 ‘편안함’에서 온다. 우리 옛 건물은 건물 내외가 자연스레 결합한 ‘편안함’이 곳곳에 배어있다. 건물과 자연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지 않는다. 건물을 지을 때는 주변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은 건물로 인해 가치를 더한다.    

  

수려한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작은 정자 하나가 결코 그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 속에 잠겨 자취도 없이 사라지지도 않는, 그래서 그 자연의 가치를 한껏 살려내고 물질적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큰 정신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되는 것, 그러한 상생의 건축놀이가 우리 건축의 ‘편안함’ 즉 아름다움이다.   



  

동네 옛 마을 집은 사리울로 된 담장이 있었다. 그 담장은 대체로 높지 않았다. 웬만한 어른들은 디딤발만 하면 볼 수 있는 정도의 높이였다. 그 낮은 담장 사이가 집과 집을 잇는 마을길이었다.     

 

집에는 반쯤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꽉 막힌 공간과 탁 트인 공간보다는 반쯤 열리거나 반쯤 닫힌 담장과 건물 사이의 공간은 집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이 안에 있는 사람이 너무 잘 보이거나 신경이 쓰인다. 안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가 보일 정도면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어린이인지 옷의 차림은 어떤지 정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정도면 된다.   

   

사람들의 눈이 있어 너무 꽉 막힌 공간보다 반쯤 열린 공간이 더 안전하다.

      

담장과 건축물 사이에는 건축 내부 못지않은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때로는 아늑하며 때로는 활발하며 왁자지껄한 다용도 공간이다. 그 공간은 주로 마당이다. 담장이라는 단순한 구조체에 의해 만들어진 마당 또한 훌륭한 건축공간이다. 햇빛과 바람을 담아내는 그 공간은 우리의 건축을 실공간의 몇 배로 풍부하게 만든다. 안마당은 그저 휑하니 비어있어도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낡은 뒷담과 건축 사이의 넓지 않은 뒷마당에는 온갖 이야기가 있다.      


담장과 담장 사이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대문을 열고 나오면 친구가 놀고 있다. 놀이기구 하나 없어도 아이들의 놀이는 지루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만들어진 웅덩이의 물을 튕기고, 전봇대에 기대고 머리를 박고 다른 아이 등에 올라타고, 고무줄 하나 딱지 몇 개로도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만들어 내는 천재다.      


아이들이 원하는 공간은 자연이다.

흙, 나뭇가지, 하늘, 물웅덩이, 새, 텃밭, 산딸기, 친구.........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도 아니고 마을이 키우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공간에서 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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