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역사가 궁금해서....

맥국, 고려선원

by 풀솜

강원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0만 년 전 무렵부터라고 한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먹도끼 등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약 1만 년 전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낚시를 했으며 토기를 사용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대규모 토기를 사용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대규모 마을을 만들고 금속기를 사용하였으며 본격적으로 농경을 시작하였다. 기원전 1세기 무렵에는 철기와 무늬 없는 단단한 토기를 중도식 토기로 한 중도 문화가 등장하였다. 중도에서 처음 발견되어 중도식 토기로 명명하였다.


춘천지역 고대 소국 - 맥국(貊國)


원래 맥(貊)은 예(濊) 한(韓)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주된 구성체로서, 시경 서경 등을 보면 중국 주대에 주나라의 동북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뒤 북중국의 요동 만주지역으로 이동해 고구려 부여 등이 국명을 가지기 전까지 예와 맥으로 중국 측 기록에 보인다.


이들은 북방 정세의 변화 또는 다른 요인에 의해 한반도 내로 이주한 고구려와 계통을 같이하는 맥족의 한 집단이었다. 맥국의 위치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당나라 사람 가탐이 쓴 『고금군국지』를 인용해 “고구려의 남동쪽 예의 서쪽이 옛 맥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이 삭주(朔州 지금의 강원도 춘천)이며, 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牛首州)로 삼아 군주를 두었다"라고 하였다.


춘천지역에는 맥국 관계의 지명 및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덕두원의 남방에 위치하는 삼악산성은 신라의 공격을 받고 맥국이 최후를 마친 맥국산성이라고 전해온다. 또 지금의 등선폭포는 당시 쌀을 씻었던 곳이라 하여 ‘시궁지’ 아랫마을을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곳이라 하여 ‘의암(衣巖)‘ 등으로 불린다.


이 밖에 일제강점기까지 보존되어 있던 토성인 우두산성도 맥국이 축조한 것이라고 하며, 춘천시 동면 월곡리에는 맥국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능산이 있다. 한편 평창과 횡성에 걸쳐 있는 태기산은 평창에서는 맥국의 마지막 왕 태기가 신라에 쫓겨 마지막 전투를 한 곳으로 전한다.


맥국의 건국과 소면시기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춘천 이남 지역이 일찍이 고구려의 현으로 편입되었고, 637년에야 비로소 신라 영역인 우수 주로 편입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맥국은 상당히 늦은 시기 독자적이고 방기 된 소국가 형태로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고학 자료를 이용하여 춘천 맥국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는 춘천지역의 지석묘와 적석총 주거지 등의 분석을 통해 춘천 맥국을 청동기시대 말기와 초기 철기시대를 거치는 500년~600년간 존속했던 부족국가 내지 성읍국가 단계로 파악하고 있다.


맥국은 넓은 의미의 맥국은 춘천을 중심으로 임진강 유역의 경기도 연천을 비롯해 북한강 유역의 경기도 양평과 남한강 유역의 충청북도 제천까지를 그 지역으로 넓게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맥국으로 상정할 수 있는 적석총이 이들 지역에도 존재하는 것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고대 강원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대국가 영토 확장을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었다. 북한강 남한강 동해안 교통로를 이용해 영서 지역에는 백제와 고구려, 영동지역에는 신라가 진출하였다. 이후 신라는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였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이후 강원지역은 명주와 삭주로 운영되었다. 강원지역은 많은 절이 세워지고 선종의 본산이었다.


- 춘천의 역사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참조 -




우리 역사에서 예맥족이라는 말은 들어봤다. 고조선 이전의 역사여서 위치가 압록강 건너 어디쯤이라 생각했다. 맥국이 춘천지방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신북면 발산1리에 맥국 표지석이 있고 아침못저수지 옆 길이름이 맥국길이다. 예맥에서 예국은 동쪽 강릉지역을 맥국은 예국의 서쪽인 춘천지역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맥국에 관련된 용어가 친근하다. 맥국의 최후를 맞았다는 삼악산은 우리 집 인근에 있다. 우리는 삼악산에 있는 등선폭포를 지나 춘천 시내에 간다. 등선폭포에서 조금 더 가면 의암호다. 의암호 북한강 길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가는 길에 덕두원이 나온다. 이 지명들이 고조선 이전 이미 춘천 지방 소국이었던 맥국과 관련이 있다니 놀랍다.


춘천시 북산면 오봉산에 있는 청평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종사찰이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바와 같이 불교는 선종과 교종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불교는 교종 쪽으로 발달하였다. 우리나라 불교의 선종이 춘천지역에 퍼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선종사찰이 춘천지역에서 있었다는 것은 의의가 깊다. 선종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중세문화를 꽃피웠다.


청평사는 고려 전기 승려 영현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청평사가 역사적으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우리나라 고려시대 정원이 남아있다. 기억에 의하면 대학생 시절이던 1980년을 전후해서 청평사 위쪽에서 정원유적이 발견되었다. 나는 청평사 발굴에 관한 기사의 신문을 오려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수행한다. 선종의 영향으로 탄생한 정원이 고산수식 정원이다. 고산수식 정원은 수목이나 물이 없이 모래와 이끼만으로 정원을 가꾸는 일본의 대표적인 정원양식이다. 청평사 정원은 1089년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만든 정원이다. 일본 교토의 서방사 고산수식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밝혀져 청평사 정원이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일본 고산수식 정원의 원류로 볼 수 있다. 청평사 정원은 현재 명승(2010년)으로 지정돼 고려선원으로 불린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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