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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의 역사공간, 덕수궁

구한말 나라 잃은 슬픈 기억

by 풀솜

미국에서 친구가 왔다.


서울 나들이 나의 최고로 좋아하는 장소는 정동길이다. 우리는 정동길을 걷기로 했다. 오늘은 특별히 친구가 덕수궁 보기를 원했다. 입장료가 1000원인데 신분증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들어가라는 안내의 말에 우리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고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으로 들어갔다.


서울에는 다섯 개의 궁이 있다. 서울 5대 궁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과 조선의 임금이 가장 좋아했던 창덕궁, 창덕궁과 붙어 있는 창경궁이 있고 서쪽에 경희궁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덕수궁이다.


그중 덕수궁은 다른 궁궐보다 규모가 가장 작다. 원래 세종의 아들 월산대군의 사가였으나 구한말 고종이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궁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덕수궁에 오면 마음이 슬퍼진다. 나라를 잃어가는 한 왕조의 가슴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광기 어린 전쟁을 탓해야 하는지, 서구열강의 침략을 탓해야 하는지, 무능한 지도자를 탓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다행히 지금은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 식사 후 햇살을 받으며 숨통 트이는 휴식의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실에 위안을 받는다.


주중이었고 점심시간이 지나 궁내는 한가했다. 다른 궁에서 볼 수 있는 국적불문의 한복을 입은 관광객이 없어 좋았다. 중화문을 지나 중화전으로 향하는 왕도를 걸어보았다. 여기가 궁인가 싶을 정도로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고종의 거쳐였던 함녕전을 비롯해 단청이 되지 않은 2층 한옥 석어당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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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맨 뒤에 위치한 정관헌 앞 정원의 소나무 전지작업이 한창이었다. 정관헌은 고종이 연회를 베풀고 커피를 마시던 곳이라 전해진다. 한옥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독특한 건물이다. 내부의 돌기둥을 보면 양식 건축인데 난간에는 우리나라 고유한 문양인 십장생으로 난간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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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으로 오기 전 고종과 명성왕후 민비는 경복궁 안쪽 향원정 뒤 건청궁에 살았다. 1895년 건청궁에서 민비가 일본의 낭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사건이 을미사변이다. 을미사변 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 1년을 살았다. 이 사건이 아관파천이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온 고종은 경복궁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고종은 경복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왔다.


당시 덕수궁은 지금보다는 훨씬 규모가 있었다. 정문인 지금의 대한문은 원래 ‘大安門’ 서울광장 앞까지 나와 있었고 미대사관저와 성공회 이번 복원된 돈덕전 중명전까지 덕수궁의 영역이었다. 당시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궁궐이었을 것이다. 덕수궁 주변은 이미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이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도 덕수궁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종은 무너져 가는 국운을 일으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우리나라가 자주국가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맞물려 행사를 크게 하고 많은 건물을 지었다. 광화문 KT 사옥 앞에 고종 즉위 40주년 비각이 있고 조선호텔 옆에는 환구단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현재 정부에서는 문화재 복원 사업이 한창이다. 몇 년 전 중명전을 복원하였고 석조전의 내부를 복원하였다. 중명전에서는 한일합방 과정의 급박했던 사건을 전시하고 있다. 헤이그 밀사 파견 등 대외활동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관료와 백성들은 물론 일본의 편에 섰던 매국노의 활동을 자세히 전시하고 있다. 중명전이라는 건물의 문화적 가치는 물론 당시의 국내상황 국제정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청각 자료가 많다.


이번에 가 보니 돈덕전이 복원되어 있었다. 돈덕전은 ‘모던라이트’라는 주제로 대한제국 황실 조명의 역사와 전기를 이용해 화려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하고 상당히 이른 시기인 8년 후 건청궁에 전기가 들어왔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오게 된 과정과 덕수궁 전기시설과 샹들리에 전구 등이 볼만했다. 돈덕전의 아름다운 건축과 궁궐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일부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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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정동길을 걸었다. 서대문로를 건너 서울 성곽 가까이 까지 올라갔다. 겨울바람이 쌀쌀했다. 어둠이 내리고 건물마다 하나둘씩 불빛이 켜졌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조용히 가슴에 스민다. 나는 친구를 만나면 서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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