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댄스 발표회
11시까지 모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강의실은 이미 공연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 반이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려야 했다. 한국무용이나 민요반 모둠북반은 인원도 우리의 두 배정도고 의상이 한복이어서 차지하는 공간도 넓고 준비하는 모습도 부산하다.
우리 반은 한편에 겨우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은 연예인들이나 들고 다닐법한 화장품 상자를 옆에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속눈썹까지 붙일 거라고 어제부터 공지해 온 터였다. 평생 처음 속눈썹을 붙이는 것인지 아니면 딸 결혼식 때 화장하면서 속눈썹을 붙여봤는지 한참 생각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쪽에는 피크닉 매트를 바닥에 깔고 귤 상자 차 군것질거리와 음료 바구니가 있어 매트에 앉아 화장을 기다리는 몇 명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차례를 기다려 약간의 화장을 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얼굴과 머리에 반짝이를 뿌렸다. 의상을 입으니 제법 당장 무대에 서도 될 거 같은 분위기다.
한 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공연할 곡을 연습했는데 오늘도 무대 설 시간이 임박해서까지 아래층에 내려가 복도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중에는 목구멍으로 뭔가 올라올 것 같고 피곤해서 제대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춤을 추기 위해 무대에 섰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공연을 위해 연습하던 일이 생각난다. 기대하고 공연을 보고 있는데 우리 둘째가 다른 아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도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던 생각이 난다. 오늘 공연에서 뒤로 도는 일만 없으면 된다고 마음 편하게 무대에 올랐다.
만약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이 먹어 의상도 그렇고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준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과 연습하고 의상을 결정하고 무대에 서니 긴장도 되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문화원 강좌는 1년에 한 번 발표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번 연말에 발표할 종목이 한국무용 민요 연극 모듬북과 함께 우리 라인댄스도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회원 수로도 무대 규모로도 10명 내외 무대에 설 예정이다. 출석률이 좋은 나도 물론 포함되었다.
1년 8개월 춤실력으로 아직 어리바리하다. 노력이 가상해서 그런지 '춤이 많이 늘었다' '제법 춤사위가 좋다'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직 스텝을 외우지 못한 곡들도 있어 한 시간 춤을 추는 동안 두세 곡은 버벅 거린다. 그러나 춤을 잘 추건 못 추건 내가 신이 나는데 어떠랴? 외우지 못 한 곡도 한 세트가 지나면 금방 생각이 나서 따라 하게 된다. 반복으로 인해 머리보다 몸이 기억한다.
발표 한 달 전쯤 곡이 선정되고 수업 시간 한 시간 중 30분은 발표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집중적으로 연습한 곡은 역시 스텝이 정확하고 팔 동작도 크고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웨이브같이 생소한 동작은 따로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탓을 안 할 수 없었다. 춤사위를 위해 엉덩이를 8자를 그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말을 이해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렸다.
평소 운동을 한 몸이라면 라인댄스를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인데 춤을 처음 접한 나는 춤을 배우느라 즐기기보다는 하루하루 긴장이었다.
이제 한고비 넘겼다.
남편에게 신경 쓰인다고 공연에 오지 말라고 하고 집을 나섰다. 공연이 끝나고 복도에서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집에 오니 공연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남편은 아이들과 형제들 카톡에 공연 모습을 올렸다.
딸들은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추냐고 난리고 발레를 조금 배운 손녀딸도 할머니 춤 잘 춘다고 하고 큰 사위는 장모님 그 옷을 어디서 사는 거냐고 묻는 등 반응이 폭발적이다. 시동생은 형수님 재능을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이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모두들 즐거워했다.
남편이 은퇴하고 시골에 오면서 사람들은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심심할 틈이 없다. 어디 살던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기면서 건강을 챙기면 그곳이 곧 내가 살고 싶은 곳이 아닐까?
오늘도 생각한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작은 텃밭에 농사짓고
자식들과 형제자매 사랑하며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글도 쓰며.....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