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착의 오랜 역사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명절이나 휴가 때 공항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들을 가는 거야?"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명 관광지마다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사람들은 왜 집에 있지 못하지?" 놀랍게도 전염병은 이러한 사람의 이동을 잠시 멈추게 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건강하고 여건이 허락되는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사람들이 피난 가는 모습을 보면서 6.25 전쟁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난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리가 파괴되고 꽁꽁 언 한강을 건너는 피난민이 생각나 안타까웠다. 얼마나 떠나기 싫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아이들을 안고 업고 사람들은 태어나서 자랐던 고향을 등지고 피난길에 올랐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한다. 전쟁이나 빈곤 억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살던 곳을 떠나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경우라도 살았던 곳으로 되돌아오고 싶어 한다.
인간은 떠나고자 하는 마음과 머무르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지니고 있다. 아무 약속이 없는 휴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떠나고 싶다. 오랜 여행에 집에 돌아오면 내 집이 제일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간이 떠나고자 하는 것은 자유를 찾기 위한 것이고 머무르고자 하는 것은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다. 사람에 따라 좀 더 가정적이고 안전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동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지역에 따라 기후에 따라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삶의 형태를 농경민과 유목민으로 나눌 수 있다. 농경민은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이고 유목민은 정기적인 이동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사는 사람들이다. 교통의 발달로 여행이 자유로워진 요즘 노마드라 하여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진정한 의미의 유목민은 줄어들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착민이라 할 수 있다. 정착민은 특정 장소에 속하게 된다. 특정 장소에 속한다는 것은 내가 장소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나를 소유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정착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구의 역사를 100으로 보면 인간 정착의 역사는 영점 몇 정도의 짧은 역사다. 구석기시대 인류는 동물을 사냥하거나 식물의 열매나 뿌리 등을 채집 생활했다. 원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살았다. 강가에서 끝이 뾰족한 돌을 찾아 잡은 동물의 껍질을 벗기고 나무뿌리를 캐기 위해 땅을 팠다. 사냥할 동물을 따라 함께 뛰어야 했고 나무 열매를 얻기 위해 이 나무 저 나무 찾아다녔다. 일정한 주거가 없으니 나무 아래서 쉬고 동굴에서 잠을 잤다.
동굴 안은 비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했다. 다른 동물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했다. 넓은 공간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몇 사람이 둘러앉아 사냥도구를 손질하기도 하고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인간이 살았던 동굴에는 여러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이 만들어 사용했던 도구, 그들이 잡았던 동물의 그림 등이 발견된다. 하지만 동굴에 살던 인간을 정착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인간을 구석기인이라고 한다. 구석기인들은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냥하려면 동물만큼 빨리 뛰어야 했고 나무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근육이 발달했다.
인간이 편해진 것은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농경과 목축은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씨를 뿌려 수확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에 가둔 가축을 지키려면 인간도 그 옆에 살아야 했다. 인간은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이 정착했다고 한다. 인류에게 정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기준이 된다. 정착 후 인간의 변화는 놀라웠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대신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면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지 않으니 잉여 시간과 잉여 식량이 생겼다. 사냥한 동물을 날 것을 먹는 대신 익혀 먹었다. 소화도 잘 되고 맛도 있었다. 남는 식량을 보관하기 위해 그릇을 만들었다. 선사시대 유물에서 집터와 토기가 발견되는 이유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이 정착했다고 말한다.
인간 정착의 효과는 놀라웠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편안한 주거생활은 아이 키우기에 좋았다. 인구가 급속히 늘었다. 인간은 공동생활을 했다. 마을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고 인류문명의 발생의 단초가 되는 것은 단연 인간의 정착생활이다.
인간의 정착은 주로 강가에서 이루어졌다. 강가는 물고기 등 먹이 구하기가 쉬웠다. 강가의 돌들은 사냥과 채집의 도구가 되었다. 적당한 돌을 찾아 사용하다 인간은 스스로 도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거칠게 돌을 사용했지만 점점 정교하게 도구를 만들었다. 정착생활은 편안하게 돌을 다듬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되었다. 도구의 발달로 일의 효율이 생기기도 했지만 일의 분업화도 진행되었다. 구석기시대 사냥과 채집할 때 아이를 매달고 다녔다. 하지만 여자가 아이를 보고 남자가 전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여자 한 명이 여러 명의 아이를 돌볼 수도 있었다. 노동의 효율성 또한 이 시기 시작되었다.
인간 정착의 역사는 인류문명 발달에 큰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이동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다 해도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인간은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3킬로씩 이동했을 뿐이라고 한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요즘 일을 위해 여행을 위해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 공항은 만원이고 관광지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하루면 지구 반대편 어디든 갈 수 있다. 오랜 이동의 역사는 지구상에 인구가 고루 퍼지는데 일조했다. 인간은 먹을 것을 찾아서 아니면 전쟁으로 아니면 독재자의 핍박으로 도저히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이동하기도 한다. 얽히고설킨 상황을 멀리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난다. 하지만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두려운 일이다.
때문에 정착으로 인한 마음의 안정과 삶의 효율 또한 인간이 추구하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구석기시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이동성과 신석기시대 정착을 선호하는 안정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직업 때문에 아니면 전쟁 등 사회적인 문제로 어떤 이유로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고장에서 저 고장으로 옮겨 산다. 반면 어디건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나이 들수록 안정성에 대한 욕구는 강해진다. 이동성과 안정성의 균형은 인간 삶의 지혜가 요구된다.
안정적인 삶이 지루해서인지 아니면 호기심으로 다른 곳에 살아보고 싶어서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은퇴 후 남편과 나는 5년 간 도시 농촌을 오가다 3년 전 도시생활을 접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 온 친구들은 내가 전원생활을 동경했을 거라고 은퇴 후 꿈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라고 말한다. 나의 아파트 생활도 즐거웠다고. 반경 1킬로 안에 도청과 백화점과 대형 서점 수많은 음식점이 있는 도시에서 살았다. 백화점 구경만으로도 반나절이 다 가고 서점 한구석에서 책을 읽으며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교통이 좋아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전화 한 통화로 친구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매일매일 지루할 사이 없이 바쁘고 즐거웠었다.
시골로 이사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반감될 줄 알았다. 전원생활 또한 매일매일 새로웠다. 새벽 5시 전에 해가 뜨기 전, 여름날이면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농부들은 벌써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다.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시골에 이사 오기 전에는 밭일을 노동으로 생각했다. 농사 지어 본 적이 없어 작은 텃밭 가꾸는 일조차 힘들지만 재미 삼아하는 농사이기에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놀 듯이 하는 농사일이 즐거웠다. 지루할 수도 있는 은퇴 후의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시골생활이다.
사람이 어떤 지역을 정주 공간으로 정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두고 정착했다고 한다. 정주주의와 유목주의 사이의 균형은 미래와 과거, 안정과 자유라는 개념과 연관된다.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다. 즐거움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아름다운 산과 강이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풍광을 만들고 풍광은 다시 나를 만든다. 지금은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나의 시골 정착을 스스로 응원한다. 하지만 언제고 떠나 새로운 곳에 가고 싶은 진취적인고 충동적인 삶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