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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Sep 22. 2022

존재, 그 자체로서의 소중함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곰출판, 2021)

처음 읽을 때에는 전기문인줄 알았다.


'어류'라는 계통의 질서를 세우는데 온 삶을 바쳤고 최고의 칭송까지 얻었던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삶의 방황이란 늪에 빠졌던 저자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의지를 불태워 한 일가를 이뤄낸 그로부터 삶의 방향타를 찾아내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내용이 전개될수록 반전의 스릴러가 펼쳐지고 조던의 어두운 맹신이 초래한 씻지 못할 죄악이 펼쳐지더니 결국은 전복되고 만다. 하지만 깨달음은 그 전복의 뒷면에 존재했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는 거짓말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 지나친 낙관주의에 함몰된 엘리트가 바로 조던이었다. 그의 맹신은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차이를 차별로 당연히 받아들이게끔 했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전사로 만들었다. 히틀러처럼. 전체주의처럼.



우리가 이름 붙여주지 않아도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실재인 것이 형태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억지로 이름을 붙이고 특정한 틀을 지운 채 다른 연결선들을 끊곤 한다. 마치 내 것 인양.


좋다.

그건 인간 고유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이 굳어지면 어느 순간 실재는 사라지고 박제가 그 자리에 남는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이고 화가에게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외침은 무리하게 틀 지우고 그 틀을 차별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호소다.


박제가 되어버리지 말자.

존재란, 그 자체로 소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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