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정보라, 아작, 2017)
마음이 불안하니 충동적인 결정을 하게 되고,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하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 손해를 입은 것을 알면 마음이 더욱 불안해지고,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불안에 떠밀려 결정을 내리는 악순환. - '덫' 중에서
저주는 그런 것이다. 악순환이 결국 자신을 덮을지도 모름에도, 기울고 병든 마음이 이기적인 인과응보의 가능성을 믿고 저지르는 잘못이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 '저주토끼' 중에서
그 저주를 위해 사람은 공을 들이고 한껏 꾸민다. 그래야 자신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고 규정하지 않으면 보통의 인간은 '양심'이라는 마지막 거울을 바라보지 못할 테니까.
사람이라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 안 그래요? 자기가 불안하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믿고. - '차가운 손가락' 중에서
사람이 헛주먹질을 하면 마음이 지치거든. 마음이. - '흉터' 중에서
하지만 결국 그건 헛손질이다. 불안한 마음은 스스로를 저주의 늪으로 잡아끌게 마련이다.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뿐인 것을 알 때쯤이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
처음부터 뚜렷한 저주의 결과란 없다. 형체가 희미했던 저주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저주를 받은 자를 잡아먹지만 저주를 내린 자의 마음도 갉아먹으며 스스로 커 나간다.
연못에 돌처럼 던져져 험한 파장을 일으켰지만 결국 이전처럼 돌아가고야 마는, 시시포스의 돌덩이와 다르지 않은,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어. 너무 많이 행복해지면 슬픔이 그리워질 테니까. - '재회' 중에서
악한 자가 벌을 받고 복수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아도 왠지 뒷맛이 씁쓸한 것은 그 뒤에 남는 쓸쓸한 여운 때문이리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아름다운 결말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