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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Jan 25. 2023

평범이 불가능해진 사회의 거친 자화상, 일베

보통 일베들의 시대(김학준, 오월의봄, 2022)

"평범은 이제 도달 불능점이다."
- p.344, 6장 결론 차가운 열광의 확산과 일베적 정치의 탄생

그동안 '일베'라는 단어와 그 집단은 그저 '루저', '반항', '혐오' 등으로 대표되어 비난받아왔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거나 합리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 없이 그저 한 무리의 '현상'으로만 치부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던 일베가 이제 주류를 위협, 아니 대체하고 있다. 물론 10년 전 일베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일베라는 단어와 그들이 중시했던 가치는 다양한 분파로 확장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거나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일베적 사고방식의 정치적 집단화는 그를 보수 정당의 당대표로까지 올려 세울 정도다.


이쯤 되면 일베는 이제 단순히 지나가는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시대적 주류의 하나로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은 차고 넘치게 되어 버렸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저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 위에 객관적 데이터의 분석이 더해진, 과감하고 직설적인 공감 200%의 표현들로 가득한 책이다.


"모든 문제가 개인화된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는 상황에서 사회를 향한 의문을 가지기는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불안의 해소 또한 사적 친밀성의 영역에서 위로받고 해결하려는 태도로 나아간다. 즉, 새로운 가족주의가 부상하는 것이다."
- p.207, 4장 일베를 만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죽창'도 '짱돌'도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체제가 뒤집힐 빈틈은 보이지 않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정당도 체제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웃는 것뿐이다. (중략) 마치 죽창을 들고 기관총 앞에 선 농민들처럼."
- p.254, 4장 일베를 만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일베 이용자들이 꿈꾸는 지도자의 페르소나는 체제 반대파를 '속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결단력'의 보유자다."
- p.265, 4장 일베를 만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특히 인상적인 파트는 실제 일베들을 FGI 한 결과를 서술한 4장이다. '왜 그들은 일베가 되었나', '일베는 정말 루저 또는 혐오주의자인가'와 같은 질문들의 답이자 충격적인 결론, 즉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과연 일베만큼 매력적인 탈출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10명의 경험담과 저자의 분석을 들여다보면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피해의식과 혐오주의, 편견, 분노 등의 조각들을 발견했다. 탈출구로서 일베를 선택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에 다다른 순간 일베는 더 이상 특정한 독립적 개체가 아닌 사회 그 자체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우려와 위기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답은 없는 것인가.


"평범한 삶이 도달 불가능한 것이 된 지금, 엉뚱하게도 그에 대한 좌절의 책임을 구조가 아닌 소수자에게 묻고 있다고 할 때, 그래서 사회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고 할 때, 다시 사회를 만들어낼 새로운 도덕의 단초는 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을 다변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평범해지는, 즉 소박하지만 분명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p.366, 나가며

결국 '평범'에 답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능력주의를 넘어 각자의 방법으로 평범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일베의 탈출구임을 역설한다. 그 또한 일베 안에서 느꼈던 것인 만큼 더욱 절실하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평범'을 이룰 수 없어 꿈조차 꾸기 어려워진 팍팍한 현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희망 삼아 나아갈 수 있을까. 계속 반복되고 정체되는 한 한국 사회에 과연 '미래'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저 잘 되겠지, 지나가겠지 하는 사이에 현상은 주류가 되었고 미래는 어두워졌다. 바뀌지 않는 한, 바꾸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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