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앙마 Mar 01. 2023

좋은 분석, 아쉬운 대안

좋은 불평등(최병천, 메디치미디어, 2022)

# 불평등도 좋을 수 있다?


상식으로 알고 있는 통념에 대한 도발적 제목은 그 자체로서 끌릴 만하다. 실제로 저자는 불평등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소득 분배와 임금 구조의 교차적 조합을 통해 상대적으로 좋고 나쁜 불평등을 구분해 주장한다.


저자는 여러 개의 통념을 깨고자 한다. 먼저 지난 30년 동안의 거시경제 흐름을 분석하며 한국경제 불평등 확대의 시작을 IMF위기를 겪었던 1997년 이전으로 돌려놓는다.


구체적으로는 1994년,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과 급격한 경제 성장을 기점으로 본다. 1988년부터 시작된 활발한 노동운동이 임금 수준의 급격한 상승을 이끌었고 때마침 중국의 경제 성장의 기회를 만난 수출기업들의 호황이 맞물려 거대한 부가 창출되었지만 그 과정에 임금격차 또한 급격히 커지며 불평등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불평등의 확대, 축소는 중국 경제의 부침과 맞물려 벌어지거나 줄었다를 반복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경제적 불평등의 시점으로 보았고 전통적인 자본-노동 불평등 담론을 통해 이른바 '적폐의 경제학'을 주장하며 반재벌,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의 차원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려 시도했다.


2018년 최저임금의 급진적 인상과 SOC 예산의 대폭 삭감은 바로 이런 인식의 결과물이었고 결국 득 보다 실이 더 많았다고 주장한다. 상층 노동의 이해관계와 정서에 무게를 둔 이러한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평등의 확대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분석은 설득력이 있고 특히 진보진영 내부를 비판하며 객관적 자성을 촉구한다는 면에서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그래서 대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노인 소득 보장을 강조한다. '한국적 현실에서 하층은 저임금노동자가 아니라 노인'이며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힘든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 대한 존경과 연대 그리고 연민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경제학적 분석으로 시작해 정치공학적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물론 가치를 절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수치적 불평등 완화의 성과를 거두는 데에는 도움이 될망정, 결코 그게 사회 전체의 '좋은 불평등'을 달성하는 방향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또한 중국 경제가 우리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시킨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에 대한 답도 되지 않는다. 거시경제적 원인은 그 외에도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분석으로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하는가.


불평등 담론에 대한 진보의 착각과 맹신에 과감하게 돌을 던져준 것은 고맙다. 저자의 오랜 내공이 후속작을 통해 진가를 발휘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 열 개를 가슴에 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