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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Jul 18. 2023

인간, 누구나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는 존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디플롯, 202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고 있긴 하지만 세계사에 있어 인류는 가장 전쟁이 없는 시기를 살고 있다. 하지만 표면화된 전쟁만 없다 뿐이지, 전쟁은 일상의 안쪽으로 더욱 파고들어 혐오와 폭력을 내재화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면에 '우열'에 기초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자리 잡고 있다. 한동안 이 법칙은 절대법칙처럼 여겨졌다. 냉혹한 현실, 날로 거칠어지는 피아 구분과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치열한 갈등.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날이 불꽃을 튀기지 않을 뿐 전쟁이나 다름없는 인류의 현대 문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지구적 종말을 향한 가속 페달을 밟는 중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경험론적 주장이 그러한 법칙과 가속력에 제동을 걸었다. '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한 자 혹은 가장 운이 나쁜 자가 도태되고 충분히 훌륭한, 그래서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다'는 이 주장은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우열의 생존학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인류 생존의 근본적 원칙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협력은 우리 종 생존의 핵심이다. 우리의 진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정치적 경쟁자들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있을 여유가 없다. 경쟁자와 교제하는 것이 서로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우열의 생존학이 치열해지고 고착화될수록 협력과 민주주의의 이상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거친 자연 속에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류가 살아남은 근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협력을 통해 자연에 적응했고 사회를 이뤘으며 상호 견제와 균형을 기초로 한 민주주의라는 장치를 통해 평화를 이룩해 내는 데 성공한 존재가 아닌가.


물론 그 장치는 불완전하다. 자기 가축화를 통해 협력 가능성을 고도화해 낸 인류지만 그 집단화는 집단 대 집단의 구조에 직면했을 때 더욱 강한 배타성을 발휘하고 방어 본능의 강화를 초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협력이 필수인 곳에서는 관용이 지식을 앞섬'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표출하던 덩치 큰 집단들이 보복성 비인간화 행태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서로를 인간 이하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보복적으로 비인간화하는 세계로 나아가는'(그것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일이 수시로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된 충돌이 인류가 더 큰 협력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기억하자. 말이 칼날이 되고 타인 또는 타 집단에 대한 혐오가 총알이 되어 일방적으로 오고 가는 이상 더 큰 협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화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 인류만큼 다정하고 협력적인 종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간이 결자해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재화된 폭력과 혐오가 전지구적 공멸로 인류를 이끌기 전에 인류의 근본적인 생존 수단이었던 다정함과 협력성을 되찾고 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증오를 부추겨 권력을 챙기는 집단이나 개인에게 휘둘리지 말자.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외부자가 그 집회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집회의 평화로운 부분임을 기억하자. 평화로운 노력만이 내구력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증오와 혐오를 이겨내기 위해 폭력적 맞대응을 하는 일이 잦아지면 오히려 외면당하기 쉽다. 물론 손을 내밀고 협력을 도모하는 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양쪽이 모두 그 가치를 인정할 때 가능한 일이다. 보노보가 침팬지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해서 침팬지가 보노보의 뒤통수를 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인류가, 지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것이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인용한 한 서술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것 같아 마무리로 남긴다.


"저는 어린이들에게 동물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서로에게도 친절해집니다." (보노보의 보호자, 클로딘 안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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