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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Mar 08. 2024

완벽하다는 믿음은 버려라

탈인지(스티븐 샤비로, 갈무리, 2022)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이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기이하다.

- J.B.S. 홀데인

 

인간의 인지(cognition)는 완벽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인지를 표준으로 삼아 세상의 모든 존재와 질서에 의미를 부여한다. 질서의 유지를 위해 일부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무심코 믿기만 하면 '예외'의 벽에 부딪혔을 때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SF는 그러한 상황을 상상력으로 포장해 현실에 펼쳐 놓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5편의 SF소설을 통해 인간 인지의 불완전성을 철학적으로 들여다본다. 철학자처럼, 컴퓨터처럼, 아바타처럼, 인간 존재자처럼, 살인마처럼, 외계인처럼, 그리고 뇌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고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황색망사점균이라는 세균처럼 생각해 봄으로써 인간 인지의 일방적인 오만을 폭로한다.

우리는 바닷가재가 어떻게 느끼는지, 나무가 어떻게 느끼는지, 또는 박테리아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요? 아마 다른 항성계에서 온 지능적인 외계인들이 어떻게 느낄지, 또는 그들이 되는 것이 어떠한 것일지를 아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중 / p.9)

SF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허구적 가설을 제안하고 그 가설이 실제로 참이라면 어떨지에 대한 탐구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인간 인지에 대한 대담한 가설의 투척은 오랫동안 간신히 붙잡아 오고 있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또 한 번의 경종을 울린다. 우리의 인지란 얼마나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며 조정 가능한 것인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좌절할 것은 아니다. 인지의 맹점과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것과 같다. 절대적인 맹신으로부터 벗어나 외부자의 시각에서 철학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나만의 동굴을 벗어나 뒤를 돌아보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책 표지에 부제처럼 표현된 'SF로 철학하기 그리고 아무도 아니지 않은 자로 있기'라는 문구는 바로 그러한 능동적 용기를 독려하는 저자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내용 자체는 무~~~~ 척 어렵다. 기본적인 철학적 '번역' 어휘(이런 류의 번역서들을 읽을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가 세상에는 무척 많이 존재한다)를 모르면 페이지 진행이 어렵다. 대학 시절 정치 철학에 관심이 좀 있어서 관련된 서적을 읽었던 경험을 되살려 먼 기억으로부터 단어들을 소환해 간신히 읽긴 했지만 꼭 모르는 어휘는 찾아보며 읽기를 권한다. 그 또한 지평을 넓히는 지적 자극이 되긴 할 것이다.(긍정적으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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