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기원(강인욱, 흐름출판, 2023)
오래된 유물로부터 지금을 살아갈 지혜를 얻는 고고학자의 눈에는 공동체의 안위를 바라며 하늘에 제의를 올리던 청동기인의 둥글고 어진 마음에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갈 답이 있을 것도 같다. ('고인돌,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의 기원' 중)
사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에는 오랜 세월 고고학자로서 과거를 발견하고 의미를 추적하는 여행기 또는 탐험일지 정도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 고고학자, 단순히 유물이나 유적에만 몰두해 연구하는 과학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 순간 여행과 탐험을 곁눈질하는 것보다 거의 모든 주제 끝에 살짝 내어 걸은 한 두 문장의 철학적 사색을 기대하며 책을 읽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 사람은 '철학자'다.
책 제목을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 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분명 과거 어딘가에, 언젠가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점을 단순히 추적하기만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굳이 발견하려 애쓰는 것은 그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앞으로를 살아갈 누군가에게 진짜 세상을 값어치 있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고고학적 발견이란, 해석이란 그 자체로서의 행위를 넘어 철학적 사색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철학자'는 고고학을 통해 그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머무르지 않고 떠나는 인간만이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 지금 당신 안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갈망이 꿈틀댄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살이 있다는 증거다. ('여행, 인류의 DNA에 새겨진 방랑 본능' 중)
단순히 공간적 개념의 길을 떠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책을 읽는 것도 결국 머무르지 않기 위해 상상 속으로, 누군가의 경험 속으로 떠나는 행위다. 고고학자는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찾아 세상 속을 헤매고 책 속을 뒤적이는 사람이다. 끊임없는 그 삶의 방황 속에서 과연 철학자가 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 어떤 철학자라도 그 길을 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온몸을 황금으로 치장한다 한들, 인간은 결국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플렉스 해야 할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아닐까? ('황금, 6,500년 전 인류 최초의 플렉스' 중)
황금만능,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산다고들 한다. 도처에 화려함이 넘쳐흐르고 그 화려함을 쫓아 그 어떤 것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불나방이 될 각오를 다지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의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일상 다반사다. 천년 왕국을 구가했던 로마나 신라도, 화려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수많은 제왕과 부자들도 결국 시간의 무게 앞에서는 평등했고 그들이 누렸을 플렉스 또한 빛바랜 추억으로만 남았을 뿐임을 눈치챈 철학자에게는 그것이 안타까웠나 보다.
그래서 이 고고학자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만능의 시대라는 화려한 찬송 뒤에 숨은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더 두렵고 괴로운 법이니까, 눈부신 빛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이는 눈이 멀뿐, 정작 바로 앞의 행복은 놓치기 쉬우니까, 모든 과거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게 아닐까 고민해 보자고 말한다.
그렇다. 오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과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후회하는, 또는 끊임없이 고민했을 철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고학자와 함께 하는 철학적 사색은 제법 즐겁고 깊은 울림을 준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 그 안에는 철학이 있고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