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계곡(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다산북스, 2025)
되기로 정해져 있는' 건 없다. 하나의 결과가 다른 결과로 대체되었을 뿐. 남은 결과를 결정하는 건 네 몫이다.(p.452)
지금을 기준으로 20년 전의 과거와 20년 후의 미래가 평행 우주처럼 놓인 마을이 있다. 마을 간에는 철책이 자리 잡고 있어 함부로 오고 갈 수 없지만 애도할 기회도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잃을 상황인 사람들에 한해 자문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관망만 하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설정이다. 슬픔에 대한 치유의 연장선에서만 허용되는 최소한의 배려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당연히 다른 시간대의 마을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미 정해진, 이뤄질 사건이나 현상에 개입할 수 없다. 개입은 시간의 흐름을 바꾸고 개입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 걸쳐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 효과다. 미래의 자문관을 꿈꾸던 주인공 오딜이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과 질서를 지키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가 하도 많이 활용되어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느리지만 흥미롭게 진행되는 소설이다. 주인공 오닐의 입장에서, 또는 마을 간 방문을 허용할지 결정하는 자문관의 입장에서 각각의 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을 대입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음이 참으로 아쉽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재가 어쩌면 미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평행 우주에 놓인 마을에서 20년 전, 20년 후의 마을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멀고 험한 길을 걸어내야 하고 엄격한 방어자(헌병)들의 감시와 제재 또한 이겨내야 한다. 머뭇거리는 순간, 현재는 이미 과거로 향하게 마련이고 그다음에는 '되기로 정해진' 미래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