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어니스트 헤밍웨이, 문예출판사, 2016)
무라카미 하루키가 동명의 소설을 쓸 정도로 사랑했다는 헤밍웨이의 단편선이다. 1927년 14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출판한 단행본인데, 헤밍웨이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보여줬던 인간 자유 의지의 중요성과 확고함을 미리 엿볼 수 있다는 게 출판사의 서평이다.
확실히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작품들 전반에 걸쳐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대응하는 모습은 헤밍웨이의 대작들과는 조금 다르다. 허무해하거나 후회하며 근본적인 절망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던 인간 승리는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자기 확신을 다잡기 위해 소환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보수적 남성성'이다. 투우사, 군인, 운동선수들로 대표되는 헤밍웨이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공포, 두려움, 절망에도 불구하고 과장된 남성성의 확장을 통해 극복을 도모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 공포를 극복하기는커녕 가중시키는 존재로서 격하된다. 자연히 그 반대 방향에 존재하는 것처럼 포장된 남성성은 타락한 사회를 극복하고 승리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나침반인 것처럼 제시된다. 그 확고한 방향성을 움켜쥐고 나아가는 것만이 인간의 자유 의지요, 승리를 향해 갈 길인 것처럼 말이다.
그 부분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공포와 무기력 앞에서 나약하기를 거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나약한 가치라고 여기는 무언가를 격하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비겁하고 소심한 존재감을 부각하는 것 이외에 별 다른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경과를 극복하고 '노인과 바다'와 같은 걸작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거장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는 견제하자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확실히 부조리해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절망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나 자신의 힘과 가능성, 그리고 자유 의지에 대한 확신과 집념일 수 있으니까. 다만 이를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것들을 내리 깔아보지는 말자. 그게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