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A.로빈슨, 시공사, 2021)
지구촌은 왜 평평하지 않은가.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중략) 경제적 번영의 길로 가려면 무엇보다 포용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감수의 글 중에서)
1995년 본격적인 WTO 체제가 출범했다. 전 세계적 자유무역 질서의 수립을 위한 오래된 미래였다. 그로부터 30년. 트럼프 2기는 WTO 체제의 끝을 선언하고 '트럼프 라운드'의 시작을 알렸다. 자유무역을 '환상'으로 규정하고 적자생존의 경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두 저자는 트럼프 라운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로빈슨 교수의 최근 인터뷰 기사가 그 궁금증을 해소해 줬다.
"현재와 같은 혼란기 속에선 포퓰리즘이 태동할 수 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 또한 착취적 제도이자 포퓰리즘이다. 혼란기엔 경제적·정치적으로 더 착취적인 제도가 상대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전 세계, 특히 미국의 경제 침체는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의 증가를 초래한다. 단순히 그 불확실성의 틈바구니에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착취적 정치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도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믿음을 트럼프가 수용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경제적, 패권적 지위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착취적 경제제도로의 회귀가 바로 관세 전쟁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본다. 저자들이 긍정적으로 보았던 미국의 포용적 정치제도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졌다.
국민이 어떤 경제제도하에서 살게 될지는 정치 과정을 통해 결정되며, 이 과정의 기제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제도다. (p.75 / 1장 가깝지만 너무 다른 두 도시 중에서) 중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트럼프에게 다시 권력을 내주었다. 그리고 다시 되찾은 권력을 바탕으로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금 전면에 내세웠다. 1기 때보다 더욱 신속하고 강력하게 세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정치는, 이 과정에서 너무나도 무력하다.
기술혁신은 인류사회에 번영을 가져다주지만, 옛것을 새것으로 갈아치우고 특정 계층의 경제적 특권과 정치권력을 파괴한다. (중략) 그런 새로운 주역과 이들이 초래하는 창조적 파괴는 막강한 지도자와 엘리트층을 비롯해 이런저런 저항 세력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p.269 / 7장 전환점 중에서)
트럼프의 회귀는 기존의 산업 분야를 넘어 미래기술을 정조준한다. 반도체와 AI로 대표되는 미래 산업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중국과 패권을 다투겠다는 의지가 특히 돋보인다. 두 저자가 한 국가 내에서의 포용적 제도를 논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기존 자본주의적 기득권과 창조적 파괴 사이의 투쟁이다. 이 부분에서는 중국이나 미국이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중국은 빼앗기 위해 싸울 뿐이다. 그 가운데서 전 세계는 피지배의 대상일 뿐,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불평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19세기와 20세기, 산업혁명과 그에 수반된 신기술 및 조직화 방법을 적극 활용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중략)신기술을 활용하지 못한 나라는 번영의 여타 동력 역시 활용하지 못했다. (p.389 / 9장 발전의 퇴보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쩌면 지금의 대혼란기는 우리에게 기회일 수도 있다. 자유무역은 결코 환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느슨할 수는 있을망정 전 세계 무역질서를 벨류체인으로 묶어놓았다. 단순한 패권적 이원화로 족쇄를 채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트럼프 라운드'도 결국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악순환'의 고리로 휩쓸릴지 모른다는 우려다. 포퓰리즘으로 다시 점철되는 경제, 착취적 구조로의 회귀가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라는 착각이 대두되는 정치는 막아야 한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뒷받침해 주는 경향이 있다. 포용적 정치제도 덕분에 포용적 경제제도가 마련되면 소득이 더 공평하게 분배되고 힘을 얻는 사회계층이 한층 더 넓어지며 정치 면에서도 더 공평한 경쟁의 장이 펼쳐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권력을 찬탈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낮아지고, 착취적 정치제도를 재창출할 동기 역시 약화시킨다. (p.442 / 11장 선순환 중에서)
오늘날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은 착취적 경제제도가 국민이 저축이나 투자, 혁신을 하겠다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로 득을 보는 세력의 권력을 강화해 주는 식으로 이런 경제제도를 뒷받침해 준다. 착취적 정치, 경제 제도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를지 몰라도 국가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일 수밖에 없다. (p.528 / 13장 오늘날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 중에서)
그래서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에 있다. '자유'에 있다. 착취적 기득권은 달콤한 이익을 제시할 수는 있을망정, 지속가능한 성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렵게 이룩한 포용적 정치, 경제제도라면, 지켜내야 한다. 창조적 파괴는 허용하되, 독점적 권력이 설 수 있는 틈은 없애야 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가장 어려운 작금의 숙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