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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일제 잔재, '납세보국'이라는 착각

조세 없는 민주주의의 기원(손낙구, 후마니타스, 2022)

by 서툰앙마
유럽에서 근대 시민 혁명은 '대표 없는 과세'에서 '대표 있는 과세'로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복지국가 혁명은 민주화된 국가가 적극적 조세정책과 복지 확대를 통해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 반면 우리는 식민지 시기 '대표 없는 과세'에서 해방 후 '조세 없는 민주주의'로 이행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조세를 통해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으며, 그 결과 경제는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가난한 시민들은 그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p.13)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우뚝 선 지도 벌써 두 세대가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잔재 청산의 구호는 여전히 살아 있고 일제가 강제로 이식한 제도와 폭압적 역사로 인한 피해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 또한 그러하다. 오랜 역사적 투쟁의 결과물로서 자리 잡았어야 할 민주주의는 일제의 편의에 따라 이뤄진 근대적 전환의 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조세 정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의 충분한 참여와 합의를 통해 결정되었어야 했을 조세 정책은 식민 지배를 위한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수탈 기조 속에서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만을 거쳐 실행되었다. 그리고 '납세보국'이라는 일방적 의무로 정의된 그 조세 정책은 일제를 넘어 군정기, 초기 국가 건설 과정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청산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일제 이전의 역사에서도 그러했는데 왜 굳이 일제의 탓이라고 주장하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각종 민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강압적 조세 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은 한민족 내에서도 자생적 민주주의의 태동이 가능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일제는 우리 스스로 쟁취할 수 있었던, 쟁취했어야 했던 민주주의를 그들의 이해에 맞게 형식화하여 기계적으로 이식한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조세 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제대로 된 청산도 실패하면서 조세와 관련된 민주적 원칙이 다시 자리 잡을 기회 또한 사라졌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조세 철학, 제도, 인적 자원 등은 그대로 역사에 승계되어 살아남았다. 정치적 편의에 따라 시민들의 참여와 합의, 민주적 절차 없이 그대로 작동되었고 이어진 것이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더욱 제한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통해 조세를 둘러싼 투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성립 토대이자 사회적 합의의 근원임을 설명하고 있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원칙처럼 시민들의 대표를 통해 조세 정책이 결정되어야 하고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 식민지 역사를 거치면서 그 과정이 생략되었고, 그 결과 조세는 여전히 부당하고 억압적인 것, 일단은 거부하고 봐야 하는 것으로 깊이 자리매김되어 버렸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만시지탄이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올바로 끼워야 한다. 복지 정책의 확대 필요성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원칙만큼이나 '과세 없는 복지' 또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조세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확장을 위한 기본이다. 조세 의제를 민주주의의 핵심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포용적 질서를 필수적으로 다시 갖춰야 한다. 그래야 증세든 감세든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두 달이 되어 간다. 시민들이 또다시 들고일어나 왜곡된 정치권력을 무너뜨리고 세운 두 번째 기회다. 조세와 관련된 논의를 처음부터,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조세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시 세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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