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 엄기호 외, 창비, 2016)
2016년에 나온 책인데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너무 많은 부분 공감이 간다는 현실이 참 슬프다. 이쯤 되면 정권이 누구 손에 있는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 걸쳐 구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며 어떤 정권도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 명확할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함께 애를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뢰 (중략) 청년 문제를 개인의 '노오력'이 아니라 공동의 노력으로 풀어나가기를 시도하자는 사회적 해법에 대한 신뢰(p.27)
어느 시대나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비판했고 변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이러한 청년 세대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한 귀로 흘리거나 약간의 수정과 보완이라는 작은 당근을 내밀었고 그조차도 받아들일 줄 모른다며 '라떼'를 수시로 소환해 왔다.
하지만 확실히 지난 10년은 양상이 좀 다르다. 출산율은 전 세계에 걸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떨어졌고 청년들의 무한 경쟁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도 활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이른바 '쉼 당한' 청년들은 일하기 싫고 놀기 좋아하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세대로 취급받기 일쑤다. 사회가 우리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신뢰가, 희망이 깨진 것이다. 청년과 기성세대 양쪽 모두에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기성세대 중 '그렇다면 왜 구조를 향해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반문하고 싶다. 당신이 그 구조 아니냐고. 당신은 그들의 분노에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느냐고. 오히려 사방을 막은 채 '왜 더 노력하지 않는가'라며 꾸짖어오지 않았느냐고. 청년들에게 기성세대는 대답 없는 벽과 같다. 벽에 대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낫다.(p.84~85)
기성세대에 호소하는 걸 포기한 청년들은 스스로를 가두거나 사회를 더 거부하는 방향으로, 혹은 거칠고 직설적인 분노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노답'이다. 10년 전부터 점점 커진 크레셴도는 이제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있고 '자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조소를 잉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데크레센도로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 결국 필요한 것은 대화, 소통, 그리고 이해다. 그러기 위해서는 꽤 많은 인내와 양보, 경청과 공감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10년 후에는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답이 나올 수 있도록 나부터 마음과 귀를 더 크게 열어야겠다. '노오력의 배신'이 아니라 '함께 하는 노오력에 의한 성과'가 책으로 나올 수 있어야 대한민국이 존속할 수 있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