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김애란, 문학동네, 2024)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요. 끝내 살아남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 누구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야기요. 그런 일이 생길 순 있어도 그런 이야기가 남기는 어렵다. 그러니 적어도 한 사람은 남겨두어야 해. 한 사람은. (p.10)
넌 이야기가 왜 좋은데? / 끝이... 있어서? / 난 반댄데. / 뭐가? / 난 시작이 있어 좋거든. 이야기는 늘 시작되잖아. / 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하지 않아? 그게 끔찍한 이야기면 더. / 그렇다고 이야기가 시작조차 안 되면 허무하지 않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p.66)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뺨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중략)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 (p.232~233)
약간의 거짓말, 그 거짓말을 진실로 도금한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구도 없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소설 속 '자기소개' 게임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그러한 방어구가 누구에게나 필요함을 인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숨기고 싶은 공통의 방어구를 눈치챔으로써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관계 맺음, 즉 서로의 버팀목으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속삭여주기도 한다.
소설은 서로의 비밀을 알아챈 3명의 인물들의 협력, 갈등, 경계를 드러내면서도 그 사이에 한 발 더 성장하는 각각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들의 거짓말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릴수록 오랫동안 억눌렸던 고통과 감정 또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야기는 시작되었고 그 안에서 변화는 이뤄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치유를, 회복을, 성장을 가능케 한다.
무너진 한 귀퉁이는 곧 다른 방어구가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거짓말일지, 아니면 단단하게 성장한 진실일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전자이길 바란다. 단단한 진실은 언제든 우리에게 다가와 뺨을 때릴지 모를 세상에 대항할 가장 확실하고도 견고한 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써 버티기 위한 거짓말이라면 굳이 힘껏 걷어내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흐르듯 두되 조금 떨어진 곳에 버팀목 하나 두는 배려 하나쯤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