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과 가식의 한 끗 차이

회색인간(김동식, 요다, 2017)

by 서툰앙마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회색 인간 중)
마음속 죄책감에, 할 만큼 했다는 면죄를 부여하는 것. (디지털 고려장 중)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게 정당합니까? (운석의 주인 중)
정당한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십시오. 착취당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래도 된다고 수긍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가진 능력에 맞는 당연한 대가를 받길 바랍니다. (돈독 오른 예언가 중)
가진 자들의 영원을 위해, 못 가진 자들의 미래가 희생되어야 하는 세상! 그것도 인류의 멸망을 조건으로! 이런 세상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략) 인류에게 미래는 없어! 그냥 이렇게 영원히 소모되다가, 멸종할 뿐이라고!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 중)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많은 것 중에서 실제로는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처한 것은 얼마나 될까.


형평성에 어긋나서 안 되고 지금은 처지가 여의치 않아 안 되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우리 주변에는 이래저래 안 되는 사이에 안 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단단히 굳어져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것들이 꽤 많다.


김동식의 소설들은 그렇게 왜곡되어 존재하는 일상을 극단적 상상력 속에서 뒤집고 우리의 가식적인 인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불편하고 때로는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단면, 우리의 날 것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 느끼는 묘한 부끄러움이다.


10년쯤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데도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프며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걸 애써 정당하다고 포장한다.


그나마 조금 양심이 있다는 사람들도 마음속 죄책감에 '할 만큼 했다'는 면죄부를 발급받을 정도의 노력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당한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착취당하지 않겠다며 세상에 외치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일 뿐임에 절망해 '헬조선'이네, '탈조선'이네 하며 멸종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세상. 그게 2025년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색이 아닌 사람들, 회색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있다.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가식적인 세상에 맞서 당당히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 그들이 더 큰 목소리, 더 큰 행동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걸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게 정치의 몫이고 사회의 역할이다.


김동식의 소설이 앞으로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소설은 공포가 아닌 기쁨이, 가식이 아닌 희망이 내비치는 방향으로 전개되길 바란다. 인간성과 가식이 어차피 한 끗 차이라면 뒤집기도 결국 가능한 것 아닐까. 변화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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