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몽유병자들(칼릴 지브란, 이상북스, 2017)

by 서툰앙마
나는 미친놈이 되었다. 나는 광기 속에서 오히려 자유와 안락을 찾았다. 그것은 고독하기에 얻을 수 있는 자유, 이해받지 못하기에 얻을 수 있는 안락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내면의 무언가를 구속하므로. 그러나 스스로의 안락을 너무 자만하지는 말자. 감옥 속의 도둑도 다른 도둑들로부터 자유로우니. (미친놈 중)
옛날에 나는 죽은 '나'를 묻으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묘 파는 사람이 말했다. "시체를 묻으러 오는 사람 가운데 여태 너만큼 멋진 놈은 없었어." 내가 물었다. "거참 기분 좋은 말을 다 하네. 근데 내가 왜 멋진데?"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울고 와서 울고 가지만, 너는 홀로 웃고 왔다 웃으며 돌아가니까." (묘 파는 사람)
눈처럼 하얀 종이가 말했다. "나는 순결하게 창조되어 영원히 순결한 그대로 머무를 것이야. 검은 것에 몸을 더럽히거나 부정한 것이 내 곁에 다가오는 일이 벌어진다면 차라리 불에 타 하얀 재가 되고 말리라." 잉크병은 종이의 말을 듣고 그 검은 속마음으로 웃었다. 그러나 감히 그녀에게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색연필들도 결코 그녀의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눈처럼 하얀 종이는 영원히 순결하고 순결했다. 그러나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눈처럼 하얀 종이)

몽유병.

수면 상태에서 걸어 다니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는 장애. 즉, 수면 상태에서 비정상적으로 움직임이 많은 것.

몽유병의 기본 환경은 수면 상태에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상태지만 현실과 꿈을 혼동해 꿈속 행동을 현실에서 옮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몽유병(夢遊病)의 한자 뜻풀이를 보더라도 '꿈속에서 돌아다니는 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몽유병자들은 비정상적이고 때로는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칼릴 지브란의 우화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누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속은 자유롭다. 현실의 얽매임도 꿈속에서는 아무 구속이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꿈속 행동을 현실로 100% 옮길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몽유병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미친놈'이라는 테두리에 가둬 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제한된 현실을 꿈으로 이끌어 궁극적으로 진리를 앞서 향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들을 우리는 '선구자'라 부른다. 그들은 먼저 보고 먼저 깨달으며 먼저 도달한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한 발 늦게 쫓아가기 때문에 선구자들의 시선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손가락질하거나 가두고 내쫓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칼릴 지브란의 우화는 이러한 현실을 절묘하게 비꼰다. 니체를 사랑했다는 작가는 현실의 눈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작 몽유병자들은 현실에 있는 자신들이지만 앞서 간 자들, 자유로운 자들을 비웃기 바쁜 사람들에게 어렴풋한 충격을 선사한다. 깨달으라는 폭력이 아닌, 유희적 언어를 통한 부드러운 자극이다.


잠언과 우화의 힘은 그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곱씹음으로써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뒤돌아 한 번 더 생각할 때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꿈꾸듯 한 발 더. 꿈꾸듯 한 번 더. 그렇게 현실에서 한 발자국 멀어져 뒤돌아보자. 그 현실은 내가 알던 것과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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