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여기, 사람이 있다.

체공녀 강주룡(박서련, 한겨레출판, 2018)

by 서툰앙마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내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 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 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이천삼백 우리 동지의 살이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 죽는 거이 아깝겠습네까?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 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 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
기러니 여러분,
구태여 날 예서 강제로 끌어내릴 생각은
마시라요.
뉘기든 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갖다 대기만 하면
내래 즉시 몸 던져 죽을 게입네다.


몇 번을 읽었지만 명연설이다.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운동가가 있었다. 고무농장 파업을 주동하다가 쫓겨 을밀대 기와지붕 위에 오른 강주룡이다.


평북 강계 출신으로 아버지를 따라 서간도로 이주했다가 스무 살에 통화현에 거주하던 최전빈과 결혼했다. 다섯 살 연하였던 남편과는 다정했지만 결혼 1년 만에 남편이 독립군에 가담하자 그와 함께 험지로 나섰다. 백광운(대한통의부 1중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을 역임했던 채찬의 가명)이 이끄는 부대였다. 기백은 높았으나 1년 만에 남편 최전빈이 죽고 시집에서는 '남편 죽인 년'이라고 고발하여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후 먹고살기 위해 서간도에서 평양으로 귀국한 강주룡은 생계를 위해 고무공장 노동자로 취직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독립군에 몸담으며 자리 잡은 사회적 의식의 씨앗은 1930년의 임금 인하와 노동자들의 반대 파업 과정을 거치며 크게 성장한 것 같다. 파업 현장을 지휘하는 지도자로서 강주룡은 누구보다 가열차게 투쟁했지만 거듭된 단식과 무자비한 폭력에 조금씩 지쳐갔고, 결국 1932년 8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이후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


강주룡의 삶은 식민지 조선,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교집합 안에 존재했다. 비록 소설이지만 주룡의 궤적을 쫓으며 시대의 억압과 차별, 그리고 종속적 질서의 무게와 답답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강주룡은 그 안에 그냥 머물지 않았다. 당당하게 주체적 자아로서 우뚝 섰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투사였고 승리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독립군에 가담했던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남편이 좋아서, 남편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원하기에 그리 했던 것이고, 노동운동 이전에도 그가 바랐던 삶은 '모단걸(modern girl)'로서 그저 시대를 즐기고자 하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보통 사람이고 싶어 노동운동도 시작한 것이었다. 열악한 노동 조건, 비인간적인 처우에서 벗어나 일한 만큼 돈 받고 여느 사람들이 누리는 만큼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와 그리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거기 올라가면 죽게 됩니다. 주룡은 답한다. 알고 있다고. (중략)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빛나는 광목을 주룡은 단단히 붙든다. 사실은 두려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어서 활활 불타고 있으면서. 지붕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곳'에도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자 시작한 노동운동이었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에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용산 참사 때에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 현장에서도, 조선소 하청노조 투쟁 과정에서도 그들이 바란 건 딱 하나였다.


여기, '사람'이 있다.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 있다.


강주룡을 보며 오늘의 우리를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또 다른 강주룡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편안함에 안주하여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을 편가르고 계급지우고 있진 않은가.


다 같은 사람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것처럼, 지금 거기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 다 같은 사람이다.


내 배운 것이라군
예서 배워준 교육밖에 없는 무지랭이지마는
교육 배워 놓으니 알겠습데다.
여직공은 하찮구
모단 껄은 귀한 것이 아이라는 것.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고무공이 모단 껄 꿈을 꾸든 말든,
관리자가 그따우로 날 대해서는 아니 되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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