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성냥팔이 소녀에게 진짜 필요했을 꿈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엠마 캐롤, 다산어린이, 2023)

by 서툰앙마

잘못한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 세상의 돈에 대한 집착이란 걸 몰랐을 거야.


안데르센의 원작 속 '성냥팔이 소녀'는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는 산업혁명에 취한 자본가들이 자유롭게 득세하던 시기였고 어린이들은 싸게 고용할 수 있는 노동 기계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여러 삽화에서는 눈 오는 거리 위 여리지만 소녀 감성을 간직한 아이가 슬픈 눈으로 촛불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지만 실제 그 시대에는 백린의 부작용으로 턱이 망가지거나 자의와 상관없이 환각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장에서 한껏 값싼 노동력으로 부려 먹고 병이 들면 성냥 한 무더기를 들려 내쫓는, 그런 시대였다.


엠마 케롤은 추악한 현실 속 슬픈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을 저항의 상징으로 부활시켰다(그의 소설 속 주인공 브리디의 붉은 머리는 그걸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잠깐의 불꽃으로 끝났던 이야기에 반전을 부여한다. 성냥의 불꽃은 브리디의 마음으로 옮겨 붙어 각성을 이끌어냈고 마치 우리 광장에서의 촛불처럼 다른 사람들의 각성을 함께 이끌어냈다. 뭉친 촛불은 들불처럼 타올라 결국 진짜 해피엔딩으로 나아갔음은 물론이다.


착취를 도모하는 이들의 전략은 치밀하다. 그들은 피착취자로 하여금 저항 자체를 꿈꾸지 못하도록 억압을 내재화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꽤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생각보다 자신이 그 피해자라고 각성하는 이들은 드물다. '잘못은 네 탓이지, 사회를 탓할 게 아니'라는 착취자들의 속삭임은 그 뿌리가 깊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 역시 단순히 개인적 각성으로 끝났다면 더 이상의 변화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답은 '연대'에 있다. 나의 각성이 우리의 각성이 되고 그 각성이 착취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미는 결합체가 될 때, 비로소 전복과 개혁으로 나아간다. '성냥팔이 소녀의 반격'은 그 출발점으로서의 연대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