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심장, 그 꺼지지 않는 힘으로

작은 땅의 야수들(김주혜, 다산책방, 2022)

by 서툰앙마
호랑이를 죽이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건 호랑이 쪽에서 먼저 너를 죽이려고 할 때뿐이다. 그럴 때가 아니면 절대로 호랑이를 잡으려 들지 말아라. (p.23)
사랑이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된다. (p.220)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를 붙잡을 수 없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연이 다하면 한순간에 낯선 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떤 변수에도 상관없이 영원히 너에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 (p.94)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p.250)
하늘이 무너져도, 그 누구도 내 빈자리를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사는 게 죽는 것보다는 여전히 나은 거야. (p.427)


"(한반도의) 호랑이 멸종 뒤편에 일제의 무서운 폭력과 무자비함이 있었다."

- 한국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엔도 키미오)


조선 시대 이후 한반도의 호랑이는 차츰 그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하지만 '절멸'에 이를 정도의 결정적 타격은 일제 치하 1910~1920년대에 걸쳐 대대적으로 펼쳐진 '해수구제' 사업으로 이뤄졌다. 헌병 등이 총동원되어 벌어진 이 사업으로 사라진 호랑이의 수만 24마리다. 물론 표범, 곰, 늑대 등 해롭다고 여겨진 더 많은 수의 야수들이 이 시기 희생되었다.


이제 '한국 호랑이'는 야생에 없다. 적어도 남한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정신 속에 호랑이를 담고 산다. 근현대사의 거친 굴곡 속에서 민중 속에 웅크리고 있던 호랑이, 즉 야수성은 사랑하는 이들, 또는 나라, 민족을 위해 수시로 발휘되었다. 독립운동 속에서, 민주화 투쟁 속에서, 광장에서 우리는 뜨겁게 타올랐고 경이로운 흔적을 남겼다. 우리의 야수성은 누가 이끌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았고, 거친 듯하면서도 강고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이뤄냈다.


소설 속에서 호랑이의 실체는 단 한 번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그 등장은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함이었다. 우리네 야수성도 그러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연대하고 분출했다. 그렇게 지켜진 것들이 이어져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가 되었다.


소설은 1918년부터 1964년까지 50여 년, 3세대에 걸친 인연과 엇갈림, 이어짐과 헤어짐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지켜낸 것들을 기억해 낸다. 호랑이는 자칫 어지러울 수 있는 그 교차점 중간에서 묵직한 균형추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히 야수성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설 속 호랑이의 진짜 힘은 지켜내야 하는 것에 대한 끈질긴 의지가 맹수 본연의 잔인함과 어우러져 통제된 방향성을 획득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 그게 꺼지지 않는 힘처럼 느껴지고 비로소 '우리' 스스로의 모습과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파친코'와 비슷한 흐름이면서도 '여명의 눈동자'를 보는 듯 생생한 소설이다. 드라마 제작 논의가 있다고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평범한 이들을 중심으로 소중하게 유지되고 계승되는 인간적 존엄과 헌신적 사랑은 그 자체로 영상적 서사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존재한다. 어떤 장면이 만들어질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