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맨(피터 S. 굿맨, 진지, 2025)
백악관에 누가 오든 다보스맨은 자기 지위를 지켰다.(p.405)
공교롭게도 지난 19일부터 '2026 다보스포럼'이 개최되고 있다. 이번 다보스포럼의 대주제는 '대화의 정신(A Spirit of Diaogue)'다. 지정학적인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 방안과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AI의 책임 있는 혁신, 기술 변화에 따른 인적 자원 투자 방향 설정, 기후와 자연을 고려한 번영을 논의해 보자는, 자못 진지하고 고귀한 설정이다.
하지만 현장은 어수선한 모양이다. 트럼프가 귀환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를 내놓으라며 관세를 무기로 협박하는 트럼프에 맞서 40%에 육박하는 미국 국채를 내다 팔아버리겠다는 EU가 맞서면서 다른 모든 논의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다보스맨들에게는 즐길거리, 볼거리가 아닐까 싶다. 대립과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은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고 또 다른 이익을 독차지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변'이 없다면, 그들은 이번에도 살아남는 것을 넘어 또 한 번의 자산 증식의 과실을 따먹을 것임에 분명하다.
우리 경제의 모습은 우연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들이 고의로 설계한 결과이다. 우리는 점점 많은 부가 다보스맨으로 향하도록 설계된 세상에 살고 있다.(p.18)
1년에 한 번씩 다보스에 모이는 억만장자들의 세계 설계와 구상은 몇 번의 고비는 있었을 망정 상당히 성공적인 방향으로 목표한 바를 이뤄냈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을 때조차 그들이 더욱 부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세계 10대 부자들의 자산 합계는 7,000억 달러에서 1조 5,0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1억 6,000만 명은 빈곤선 이하로 떨어졌다.
그들(다보스맨)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세법을 고쳐 대중의 부를 자신들에게 이전했고, 정부는 팬데믹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에 너무 취약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 결과로 얻은 자원을 자선을 위해 사용하면서 찬사마저 요구하고 있었다.(p.294)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찬사를 요구하고 기후 보호와 지속 가능한 지구 만들기, 보편적인 사람들이 보다 많은 부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구자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귀족 정신으로 무장하기 바쁘다. 이들의 이러한 행태는 경제적 과실을 남들보다 더 많이 따 먹는 것에서 나아가 민주주의마저 파괴하고 있어 더욱 심각성을 더한다.
모리슨은 평생 민주당 당원이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노조원과 마찬가지로 그는 중국과 맞서겠다는 트럼프의 약속, 그리고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탈취하고 있다는 트럼프 선거운동의 핵심 신화에 솔깃해 트럼프에게 마음을 빼앗겼다.(p.95)
다보스맨은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수사, 반기후 변화 행동, 보호주의, 국수주의, 인종주의, 편협함, 나르시시즘, 여성 혐오에 눈 감을 수 있었고, 이것이 다보스맨의 진정한 동기로 보인다.(p.220)
이들에게 과연 맞설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독점적 권력은 날이 갈수록 그들의 영역에 흡수, 강화되고 있고 그럴수록 그들의 영토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맞서고자 했던 이들은 농노로 전락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나아가 힘을 실어주기까지 한다. 소위 좀 배웠다는 사람들, 그들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주식 시장에 풀어놓은, 각종 연구소에 달콤하게 뿌려대는 그들의 미끼에 투항하기 바쁘다. 이래서야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다보스맨으로부터 권력을 되찾기 위해 폭동이나 아이디어의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항상 존재해 왔던 도구, 즉 민주주의를 신중하게 사용할 것이 요구될 뿐이다.(p.487)
저자는 대항의 수단으로 협동조합, 기본소득, 부유세 등을 제시한다. 경제적 재분배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당 부분 동감한다. 하지만 과연 현실로 이어낼 수 있을까 하는 머뭇거림이 존재한다. 실패를 너무 많이 봐온 까닭일까.
그래도, 정치나 정책은 지향점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며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뻔해 보여도 결국 옳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