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줄 수 있을까, 놓아둘 수 있을까

'미라클 벨리에(에릭 라티고 감독, 프랑스, 2015)'

by 서툰앙마


#1. 가족의 놓아주기&나의 놓아두기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폴라. 차라리 똑같이 못 듣고 말하지 못했다면 그들의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폴라는 그렇지 못했기에 가족과 사회를 잇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다. 청소년기에 들어선 폴라 역시 그런 자신의 위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원망의 대상으로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폴라가 아이러니하게도 노래에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가족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는 폴라는 자신의 꿈을 놓고 고민한다. 영화는 폴라의 '비상'과 가족의 떠나보냄, 그리고 둘 모두의 성장을 스토리라인으로 구성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가족을 중심에 놓고 있지만 모든 가족의 문제일 듯하다. 놓아줄 수 있는가, 놓아둘 수 있는가. 장애를 가진 가족을 포함한 입장에서는 더 절실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들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하고 서로 더 의지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분리는 더욱 우려할 것이 많을 수밖에.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도록 놓아주고 놓아둘 수 있어야 그 또한 가족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결심과 의지가 온전하게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사회적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함도 중요한 문제다.


#2. 편견은 불편임 뿐이어야 한다


우리는 장애인을 향해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을까. 과거에는 그저 격리, 분리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섞이기는커녕 홀로 설 수도 없는 것이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병신'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한자어가 나와 다른 대상을 저급하게 부르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홀라의 아빠는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시장의 재선 공약(마을의 산업화를 위한 개발)에 반발해 출마를 결심하고 실제로 싸워나간다. 그걸 우려하거나 만류하는 주변의 상황은 있을지언정, 그 안에 '병신이 뭘…'이라는 시선을 들이대는 건 상대 후보인 시장뿐이다.


우리라면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장애인이 정치를 할 수 있다. 비례대표를 받아 당선되는 이들을 가까이에서도 봤다. 하지만 일반적인 선출직으로는 후보로조차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그들을 가만히 놓아주지도, 놓아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시혜의 대상으로, 돌봄의 대상으로, 가엾은 이들로 묶여 특수한 계층으로 분리되고, 관리당하는 경우가 많다.


놓아주자. 놓아두자. 그럴 수 있을 만큼의 환경과 인식 선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일원이다. 편견이 단순히 약간의 불편함뿐이어야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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