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 한 장의 추억

by 서툰앙마

큰아들 녀석이 서랍을 뒤적이다 시디 한 장을 꺼내 물었다. 아빠 이거 노래야?

아무 표시도 없어 자칫 공시디라고 착각할만한 비주얼이다. 스크래치도 좀 있는 걸 보니 세월의 흔적은 좀 있어 보였다. 일단 들어보자.


작은 소리가 들린다. 볼륨을 키워보니… 아카펠라다. 한창 열심히 아카펠라를 하던 시절, 이곳저곳에서 원곡 파일들을 모아 한 장의 시디에 담아놓았던 모양이다. 112곡. 아카펠라가 장르 음악이다 보니 유명하지 않은 곡들은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짚더미에서 바늘 찾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인터넷을 휘젓고 다니던 기억이 났다. 이게 왜 여태 서랍 속에 묻혀 있었을까. 정말 까맣게 잊었었다.

15년쯤 되었을까.
성가대 생활을 하며 아카펠라를 처음 접했다. 본당 2층 성가대석에 모여 연습하던 형, 누나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에 이유 없이 매료되어 끼워달라 한 게 첫 시작이었다.

성가대 생활도 즐거웠지만 일요일 오후를 온전하게 바쳐야 했던 아카펠라 연습은 '행복했다'. 내게도 이런 취미생활이 생겼다는 것을 넘어 오롯이 목소리로만 만들어내는 화음과 멜로디는 짜릿함 그 자체였다. 성당에서, 결혼식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기회도 있었다. 박수갈채를 받는 그 황홀감. 내 평생의 취미는 이것이구나, 확신했다.

10년쯤 되었을까.
형, 누나들이 바빠지면서 아카펠라를 하기가 어려웠다. 궁리 끝에 동호회를 찾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방배동까지 먼 거리를 오가며 동호회 활동을 했다. 아카펠라를 좋아라 해서 모인 사람들의 그 지하 연습실은 정말 '행복했다'.

뜻이 맞는 이들과 '엔젤스 코드'라는 이름으로 팀도 결성했다. 성가대에서 하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넓어졌다고나 할까. 깊어졌다고나 할까. 박수갈채는 더 커졌고 부를 수 있는 곡들은 더 다양해졌다. 어엿한 음악인이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이 바빠지다 보니 아카펠라는 자연히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조차 빠져버렸다. 주말을 이용해 동호회에 나가기도, 성당에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같이 하던 동료들도 그러했다. 하나씩 하나씩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내 행복은 또 다른 행복에 자리를 내어주고 서랍 속에 묻혔나 보다.

먼지를 툭툭 털어내니 마음 한 귀퉁이에 묻혀 있던 그때의 열정이 조금 끌려 나온다. 식상하고 늘어졌던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어쩌면 그냥 끌려 나온 추억은 아닌 모양이다.

한동안은 헤어 나오기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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