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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영 Sep 01. 2019

'미인도'위작사건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최지영의 공연읽기 3

  '미인도' 위작 논란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 강훈구 작, 황재헌 연출)  이라는

긴 제목의 작품은 두산아트센터에서 올해 8월3일부터 18일까지 공연되었다.


  이번 공연읽기 역시, '내가 공연을 통해 무엇을 보았나', 그리고 '내가 본 것들이 공연의 맥락, 주제, 관객과의 소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관점을 가지고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


  우선 공연이 진행된 Space 11 공간은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3방향의 관객석에 둘려쌓여 있는 일종의 광장같기도 하고, 콘서트장같기도 하다. 그래서 보통 무대뒤쪽의 막이나 배경 등의 장치가 없어서 '열려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공간에 마치 사무실같이 앞과 좌우를 연결한 3방향으로  긴 탁자들이 세팅되어 있다. 이 탁자들은 공연내내 한번도 이동되거나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고 그 탁자들과 평행되게 천장부분에 미디어 화면이 설치되어 그 화면속에서 계속해서 정보와 이미지가 방출되고 있었다. 관객석에서 살짝 내려다보는 구조로 되어있어서, 미디어 화면 아래, 탁자로 둘라쌓인 장소안에서의 배우들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다. 구경한다기 보다는 지켜보게 되었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설치되어 있는 무대와 관객석과도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서도 오픈되어 있는 무대공간이라서, 우선 정서적으로 적당한 거리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따~ 라라 따~라라' 제목은 잘 모르겠으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주제곡으로 사용되어 귀에 익은 음악과 함께 배우들이 등장해 한동안 무대 뒤쪽에서 한판 놀다(?)~ 극이 시작된다. 7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우선 윤예나. 극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최초 공채 학예사로 갓입사. 천경자를 주제로 논문을 썼고, 민주화운동을 했으며, 민주화운동 판에 있는 남자친구가 있는 인물.

박창기. 윤예나의 남자친구. 운동권의 핵심 주동인물(?). 절친에게 프로포즈 편지를 대필하게 하고 그것을 윤예나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달달하게 프로포즈.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투옥되게 된다.

유진모. 학예실장으로서 위작사건이 터지자, 윤예나에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밝혀내도록 끊임없이 윤예나를 독려한다. 그러기 위해 갓입사한 윤예나를 '미인도'사건에 대한 책임자로 임명해 오히려 선배들이 그를 돕도록 한다.

세명의 학예관 선배들. 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 동문으로 학예관으로 근무 중이며, 미인도 사건이 터지자 그야말로 전전긍긍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갓입사한 윤예나가 맘에 들어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자기들 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해가기 위해서 나름대로들 고군분투 해 나간다.

그리고 천경자의 딸로 추정되는 여인.


  극은 제목처럼 철저하게 미인도 위작논란 사건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인물들의 반응을 투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주인공인 윤예나에게 감정이입될 수 있는 장치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남자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운동권세계에서 일반 직장인의 세계, 그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천명했던 '보통사람'들의 군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녀의 서사를 펼쳐보이고 있다. 보통사람들인 학예실직원들은 자신들에게 떨어진 위기: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실제 작가인 천경자의 발표로 인해, 땅에 떨어진 국립현대미술관의 신뢰와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군분투한다. 그들에게 미인도가 위작인가 아닌가는 실상 중요하지 않다. 그 논란으로 인해 발생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위기와 그로인해 자신들에게 발생하는 압박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윤예나도 이러한 당면과제 속으로 빠져들어가며 오히려 이러한 당면과제를 수습하고 회복하는 것으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로 그것을 증명해 낸다.

  이 극이 흥미로운 것은 , 오로지 학예실의 직원들의 반응과 대응, 그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윤예나의 남자친구가 등장하고, 천경자의 딸로 추정되는 여인이 등장하지만, 이는 오히려 윤예나가 미인도가 진품임을 증명해나가는, 그리고 증명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의 촉진제로서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그 절정은 천경자의 딸이 등장해 직원들과의 논쟁을 늘어놓게 되는데, 직원들에게 그들의 진실은폐에 대해 따져대는 그녀에게 윤예나가 처절하게 따귀를 날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이 과정에서 허공에 달려있는 미디어화면에서는 끊이없이 이들의 작업과정, 언론의 반응에 대한 메모 그리고 가끔 천경자가 등장하여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하는 인터뷰 화면 등이 방출된다. 그러나 그것은 방출될 뿐이다. 어떠한 영향을 미치거나 한다기 보다는 이들이 충실히 자신들의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 속에 떠도는 또 하나의 환경이랄까?


  학예실 직원들은 이 사건을 용케 해결해내고는 다함께 회식을 간다. 노래방도 간다. 그리고 거기서 윤예나는 '오늘밤'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아, 완선이 언니의 오늘밤, 바로 그 노래다. "오늘밤,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무심한 참새소리 구슬피 들려~~~"  아, 이 노래. 이 노래가 이렇게 처절한 노래였던가? 이 노래가 발표되었던 90년대에, 사람들은 "어둠이 무서워요? 니 눈이 더 무서워요"라고 흥얼거리며 김완선의 그 센세이셜한 고양이 눈이 내뿜는 에너지에 함몰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극에서는 처음으로 그럴싸한 무대장치를 활용한다. 마치 가수들이 콘서트장에서 하듯 조명을 집중받는 무대가 계속 상승해 올라가는~~~, 그러면서 오늘밤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잔상처럼 계속 남겨진다.


  극이 마무리 되었나보다 싶을 때, 미디어 화면에서는 20년후 학예실장이 되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윤예나의 모습이 투영된다. 그녀는 미인도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울먹 울먹이며 죄송하다는 단어를 계속 내뱉고 있다.


  내 뒤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관객이 "연극도 영화나 뮤지컬처럼 재평가되어야 할 것 같애.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애"라는 말에 얼핏 정신을 차리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고보니, 관객들이 대부분 20대들인 것 같다. 이들은 어떻게 알고 이 작품을 보러 온 것일까? 그 관객의 평가는 이 작품이 재미있었다는 것이었겠지? 나 역시 거의 2시간 가량을 오롯이 작품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치 다큐멘터리나 수사물을 보듯이 관찰하고 응시했던 것 같다. 무대환경, 미인도 사건을 타개해나가려는 인물들의 서사와 장면들의 전개들이 나를 계속 몰입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생각하게 된다. 1990년의 청춘을 보냈던 내게, 이 작품은 하나의 기억같기도 하고 추억같기도 하며, 부채같기도 하다. 나치 전범의 재판장에서 등장한 전범들이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자신들은 그저 충실히 맡은 임무를 했다고 발설했던 그 장면이 떠오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그 단어도 떠오른다.


  이 작품을 포럼연극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연출은 '그 당시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 속에서 그것을 회복하려 하는 한명의 인물을 보여주려 한 것 뿐이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 작품(희곡)은 윤예나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그 순간, 자신의 남자친구가 그 대필편지로 인해, 분신한 학생의 죽음을 조정했다는 의혹을 뒤집어쓰면서 끌려가는 것으로 대치시킨다. 바로 그 사건이다. '강기훈 대필사건'! 내가 평범한 보통사람으로서 내 앞에 떨어진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을 때, 내 옆의 가까운 사람이 투옥되고 있었다는. 또한 윤예나 역시 처절하게 처절하게 '오늘밤'을 불러대지 않았나?

무엇이 옳고 그르고 떠나서, 왜 이렇게 윤예나는 '오늘밤'이라는 노래를 처절히 불러댈 수 밖에 없었는지?  그들은 왜 그렇게 위작사건을 회복시키려고 고군분투했는지, 그 사람들에게, 그리고 윤예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의 문제를 밝혀볼 수 있는 연극적 장치를 투입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이 작품은 관객들의 담론들로 인해 완성될 수 밖에 없는 연극이 아닐까?


  미인도 사건이 발생했던 90년대를 지나 2019년, 나는 50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임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느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윤예나의 자리가 내 자리가 될 수도 있음을, 어찌 운좋게 그 자리를 비켜왔다 해서 다행이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 사건은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단히 마음먹고 선택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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