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 꽃 필 때면...
뜨거운 햇살과 함께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벌레소리까지 어우러져 고즈넉한 여름날이었다. 당시 나는 IT관련 강의를 하던 강사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모 여고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도움될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어 서울 근교에 있는 이곳.여자 소년원까지 오게 되었다. 크고 작은 범죄에 연루된 15세부터 19세사이의 여자 청소년들의 감호소였다. 폭력, 약물, 등 그 사연도 다양했다. 대부분 결손 가정에서 자라 사랑이 더욱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회와 격리된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어떤 모습일까?! 설렘일까?! 아니면 떨리는 걸까?! 묘한 감정이 가슴 아래 깊은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40여명의 아이들이 하늘 색 운동복을 입고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한결 같이 예쁜 모습들, 초롱초롱한 눈, 다들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갖었던 선입견이 지나쳤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가 없었다. 부모와 함께 미래를 고민하며 때론 투정부리고, 진로를 걱정하며, 감성에 맞는 음악을 듣고, 또르르 눈물 흘려야 할 나이의 아이들.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에는 뭔지 모를 무언가가 계속 맴돌았다. 가슴은 계속 떨렸다. 준비해온 강의를 할 수 가 없었다.아니, 하기 싫었다. 내가 준비한 강의는 IT. 즉, 직무 위주의 강의였다. 대신 다른 이야기, 소소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랑을 나눠주고 싶었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들의 몸을 열어주고 닫힌 마음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도,소통하고 싶다고 얘기 했다. 늘, 규칙적인 삶에 익숙했던 탓이었던지 내 태도에 다소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도종환시인의 시.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를 읽어내려갔다. 그들은 소리 없이 듣고 있었다. 때론,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도 여기저기서 보였다. 시 한편으로 이들의 감성을 깨울 수 있는 건가?! 그저 평범하고 순박한 여고생들의 모습들을 보며 나는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잘못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더 커다란…….대못 같은 마음의 짐을 가슴에 하나씩 안고 살아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아픔”이란 단어로 이야기 합니다. 우리 모두는,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아픔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은 일생을 도전해나가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 보람을 찾고 그렇게 노력해 나가는것입니다.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그렇게 말입니다.
지금의 시간들을 실패라고 단정 짓고 계속 머문다면, 더 큰 아픔이 찾아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소중하며 사랑받을 자격과 시간들이 너무 많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고 도전하십시오. 여러 가지 필요한 그리고 꼭 해보고 싶었던 교육을 받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음 합니다. 가는 길이 고단하겠지만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결국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음 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말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나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받을 자격과 시간이 많다. 라고 주문을 외운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어떤 커리큘럼에 의한 것이 아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하듯. 얘기 해 나갔다. 그리고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딱딱했던 처음의 모습과는 다르게, 애인이 있나? 돈은 얼마나 버나?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 등등을 물어왔다. 사회에 나오면 다시 만나자 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나오는데 교도관 선생님이 숨 가쁘게 뛰어 오셨다. 아이들이 서운해하며 내게 선물을 하고 싶다며 잠시만 더시간을 내달라는 말을 전해왔다.아이들의 손에는 무엇인가 들려있었다. 교도관 선생님께 부탁해서 아이스크림을 41개를 샀다는 것이다. 복도에 서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었다. 두 번째 선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악기를 받았다. 이곳에서도 특별활동시간이 있었고,그들이 연주하며 들려준 한곡의 음악.“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고향의 봄”이었다. 다 듣지 못하고 눈물이 흘렸다. 오히려 내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깊은 정을 알게 된 거였다. 그 때 반장이 말하였다. “오늘 오셔서 좋은 얘기 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 나가면 머리는 공짜로 깍아드릴께요” 모두 까르르 하며 웃었다.미용 반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선생님 선물이에요, 우리들 꼭 기억해주세요”예쁜 손수건으로 정성껏 싸서 전해준것은 바로“오카리나” 였다. ‘감사합니다. 평생 잘 간직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오카리나를 받아 들자. 박수를 보내주었다. 복도 양 쪽으로 나뉘어 서 있는 친구들 한 명 한명과 악수를 하고 나오는 내내 함께 울었다. 아름다운 아이들. 사랑스런 친구들.이렇게 그들과의 만남은 짧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고 끝내게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들과의 약속대로 나는 오카리나를 가끔 손에 들고, 이리 저리 불어본다.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그래서 더 외로웠던 그들,그녀들이 내게 전해준 따뜻한 마음들.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세상 곳곳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40여명의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고, 사회로 복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슴 설레는 그들과의 2시간동안의 만남.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리고 오카리나는 치자 꽃이 활짝 필 때면 어김없이 내손에 들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