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시나리오가 당선되고 제작 지원을 받게 되어 기쁨과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지만, 그와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허무감이 스며들었다.
아버지가 입원하시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신 후에 본격적으로 장편영화 일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걸 해도 과연 누가 봐줄까.’
‘결국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작은 목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반복되며 마음을 조여 왔다. 일상은 이전과 다르지 않게 흘러갔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조용한 공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생활은 예전보다 조금 더 바빠지고 복잡해졌다. 회의와 일정이 이어졌고, 캐릭터와 장면을 점검하는 작업이 하루를 채웠다. 겉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공황 발작이 찾아온 날은 잊을 수 없다. 전날 늦은 회식 후 집에 돌아와 잠시 쉬었고, 다음 날 오전 회의에 참석했다. 그 순간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리가 핑 돌았으며, 시야가 흐려졌다.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누웠지만, 저녁에도 같은 증상이 반복되어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이후 공황은 점점 잦아졌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날이 생겼고,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긴장과 불안을 동반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심장은 이유 없이 뛰고 숨은 가빠졌으며, 몸은 늘 경계 상태에 머물렀다. 버스의 흔들림, 사람들의 시선, 사소한 소음 같은 일상의 작은 자극들조차 마음에 균열을 냈다.
그럼에도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 창작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허무와 불안이 몰려와도 글을 쓰고 장면을 구상하며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그 시간은 체력과 정신을 동시에 소모하는 일이었다. 몇 달이 흐르며 나는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조용히 시험받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큰 병이 나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이 기회를 쉽게 놓을 수 있을까. 갈등하는 사이 작업은 점점 속도를 잃었고, 진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불안이 몰려왔다. 가슴이 조이고 머리가 붕 뜨는 듯했으며 숨이 막히면, 손가락을 꾹꾹 눌러가며 버텼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채 중간에 돌아와 집으로 향한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석 달을 버티다 결국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나는 마침내 병원을 찾았다.
-**-
차가운 의사의 말투.
이런 사람들 많다는 듯한 시선.
전형적인 공황장애라며 내 말을 5분쯤 듣더니, 그는 곧바로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받아 들고도 선뜻 먹지 못했다. 정신과 약물에 대한 두려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쉽게 끊지 못할 것 같다는 인식,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의사들의 태도까지. 여러 가지가 겹쳐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약이 잘 맞아 치유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주일쯤 약을 가방에 넣어 둔 채로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자기 전 한 알을 먹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가슴이 꽤 두근거리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져 있었고, 조금만 일어나 움직여도 가슴이 답답해질 것 같은 불안이 따라왔다. 전날 먹은 공황장애 약은 반나절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작용이구나.’
약을 그대로 간직한 채, 소문 끝에 유명하다는 다른 정신과를 찾았다. 그 의사는 이야기를 꽤 오래 들어주었다. 원시 시대의 생존 방식부터 시작해, 생존 본능이 DNA에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공황에 대한 긴 설명을 듣고 난 뒤, 나는 지난번 부작용을 겪었던 약을 꺼내 보여주며 이 약 대신 다른 처방을 부탁했다.
그 사이, 나는 장편 작업을 계속해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갈림길에 서 있었다. 기관의 관계자를 만나 현재 상태로는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히 말했다. 관계자는 한 달의 시간을 줄 테니, 그 안에 계속할지 말지 결정해 달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은 착잡했다. 평생 꿈꿔오던 일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꿈보다도, 매일 숨이 막힐 듯 몰려오는 공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한 달 동안은 제대로 치료를 받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약물은 여전히 두려웠지만, 그것이 유일한 치료의 길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심한 공황이 찾아온 날, 새로 처방받은 약을 입에 넣었다.
마음이 가라앉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이전보다 더 큰 부작용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