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

by 시온
반드시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온다는 건, 누가 정해 놓은 세상의 이치일까. 우리는 잠깐의 고통이 끝나면 영원한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잔혹하다. 누군가를 가장 견디기 힘든 방식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추락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어느덧 나는 혼자 나가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대아파트도 요즘은 선택지가 많았고, 청년 월세 지원 제도 같은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즈음에는 다행히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어 전세 자금을 아주 조금이나마 모을 수 있었고, 이제는 임대아파트 결과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 무렵은 겨울이었다.

집을 급하게 나서다 계단에서 올라오던 아버지와 마주쳤다. 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창작을 이어가는 동안, 아버지는 술을 줄이고, 작은 아파트의 관리원으로 다시 근무를 시작한 상태였다.

집 안에서도 거의 1년 가까이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를 마주한 순간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예전보다 더 앙상해진 얼굴과 몸, 햇볕을 오래 맞은 듯 검게 그을린 피부.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만은 눈에 띄게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비참해 보이는 그 모습으로, 아버지는 애써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가나?”

짧은 정적 끝에 내가 물었다.

“배가….”

아버지는 그동안 술을 많이 마셔서 술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딘가 어색하고 납득되지 않는 대화를 남긴 채,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로 향했다.


-**-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서였다. 엄마는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얼굴이나 배가 이상하다는 말을 몇 번 하긴 했지만, 그땐 무심코 흘려들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직접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더는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고집은 생각보다 훨씬 완강했다. 일이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병원에 가자는 말을 계속 피해 갔다. 내가 보기엔 단순한 술배라고 넘길 수 없는 상태였다. 엄마도 밤낮으로 달래고, 때로는 협박에 가까운 말까지 해보았고, 고모까지 나서서 설득했지만 병원의 문턱을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직접 설득해 보기로 했다. 검사만 받아보자고, 비용은 내가 다 낼 테니 한 번만 같이 가자고 말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버지는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사흘만 달라고.

그 사흘 동안 아버지는 혹시 결과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욕을 하고, 보험 서류를 정리했다고 했다. 말하지 않아도, 최악의 상황을 이미 떠올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흘 뒤, 나와 엄마는 아버지의 양팔을 각각 붙잡고 택시에 올랐다. 이동하는 내내 차 안은 고요했다. 아버지는 가끔 정적을 깨듯 내게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을까. 누구도 자신의 삶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람이 잔뜩 빠진 풍선처럼 초라해진 아버지는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경화 말기입니다.”


담담한 의사의 말에 가슴이 갑자기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술을 한 모금이라도 더 드시면 간암으로 갈 수 있습니다. 바로 입원하셔서 복수부터 빼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배에 차 있던 것은 술이 아니라, 간이 망가져 차오른 복수였다. 퇴직 후 2년. 아버지가 퍼붓던 술은 멀쩡하던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고, 결국 몸을 망가뜨려 삶까지 잠식해 버렸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을 나오는 길은 착잡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이제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인생의 대가라며 웃어넘길 수도 없고, 살아온 삶이 너무 불쌍해서 울 수도 없었다. 나는 그를 너무 사랑해야 할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예배 때마다 어떤 기도로 마무리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기도,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는 말,

아버지를 구원해 달라는 문장들 사이에서 마음은 자꾸 엇나갔다.

신이 내게 준 첫 번째 시험 같았다. 그렇게 원망하던 아버지가 내 앞에서 병들어 가고 있었다. 비참하게. 그런데도 복수 같은 감정이나 통쾌함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용서도, 구원도, 병의 치유도 간구하지 않았다. 다만 이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그것만을 조용히 빌었다.


-**-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동안, 다행히도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술을 한 번에 끊고 치료에 전념하셨다. 복수는 날로 빠져 배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망가진 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약 먹고 관리하면 조금 불편한 몸으로 라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단 희망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가 제작 지원사업에 당선되어 감독으로서의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다. 병원에는 가끔 엄마와 함께 문병을 갔고, 말로는 도저히 꺼내지지 않는 진심 대신 예배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일은 이상하리만큼 잘 풀렸다. 주변 사람들은 적극적이었고, 도와주겠다고 먼저 다가오는 이들도 많았다. 지원비 문제나 제작 방식으로 골머리를 앓는 날도 있었지만, 다리가 붓거나 몸살이 나는 정도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는 순조롭다고 느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는 적극적이었고, 성격이 밝아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의 내가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 ‘총량의 법칙’을 아는지. 배터리는 거의 다 닳았을 때, 꺼지기 직전 가장 밝은 불빛을 낸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용량을 가진 배터리인지,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제 겨우 이 정도의 고난을 지나면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보다 더 크고,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앞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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