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색종이 크기의 그림책 [쥐··· 좋아하세요?]을 만들며 얻은 자신감으로 올해 그림 에세이를 책으로 만들었다. 브런치 북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 쓴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는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것들 경험들, 확장된 생각들을 담은 이야기다. 내 하잘것없는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지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됐을 때, 다 만들어놓은 책을 묵혀두며 발간하지 않았다. 인디자인 편집도 익숙해진 터라 어렵지 않게 레이아웃을 잡았다. 그럼에도 선뜻 책으로 만드는 게 내키지 않았다. 무의식 속에 숨은 내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이 지나고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하던 몇 개월의 공백이 생기면 감도 떨어지고 일하는 프로세스도 잊는다. 올해 최소 두 권 이상의 책을 계획했다. 회사처럼 누군가 계획을 세워주지 않는 프리랜서, 자영업자의 삶. 어느 누구도 내 뒤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며 스스로를 다시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이미 해본 일이고 한 번이라도 해 본일은 더 잘할 수 있다. 그렇게 책을 찍어내고 유통하기 시작했다.
출간 한 달, 독립 출판 플랫폼에서 종합 Best / 문학 Best, 가장 많이 팔리는 책에 등록되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것 같다. 내 경우도 나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편이다. 무얼 해도 늘 부족한 것 같은 느낌, 더 잘할 수 있는데 노력을 덜한 것 같은 자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물며 나의 창작품이 세상 밖에 내놓아진다는 것은 서슬 퍼런 세상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자, 어떠한 평가 위에도 놓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두렵고 떨렸다. 이게 가장 솔직한 감정이었다.
책이 입고된 이후, 조마조마하는 심정으로 며칠을 보냈다. 수많은 책들이 발간되자마자 묻히고 잊힌다. 내 책도 분명 그럴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플랫폼에 접속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많이 나가는 책에 조금씩 상위 링크가 되더니 이내 첫 번째 순위까지 올라왔다. 그 뒤로는 종합 Best, 문학 Best가 되었다. 뛸 듯이 기쁜 순간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책을 유통한 곳에서 베스트를 해본 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무언가 큰 보상이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순위에 집착하지 말자고 되뇌웠는데 역시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다.
그 뒤로 재입고 요청 메일도 받았다. 책이 곧 품절된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품절되다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 일어났다. 내 책을 믿고 구매해주신 서점지기님들과 일반 구매자분들께 두 손 모아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춤하지 않고 해낸 스스로에게도 칭찬의 말을 건네본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덜 머뭇거리자고 다짐해본다. 결과는 나오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법이지 않는가. '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배움을 준 책 출판은 오늘의 내게 가장 큰 선물이자 지지대가 되었다. 이제 이 지지대를 발판 삼아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것만 남았다. 바로 실행하자고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