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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Sep 01. 2022

창작할 때는 조금 너저분해도 괜찮다.

슬럼프에 대처하는 작은 방법

바느질 공방 풍요하리.

한쪽 벽면에는 바느질 작품이 한가득 장식돼 있고 다른 쪽 노란 벽면에는 그림이 가득 걸려있다.

요즘 창작활동이 꽉꽉 막혔던 내게 언니 하리가 극약처방을 위한 [벽면에 그림 걸기]를 제안했다.


약 2년 반 동안 매일 그림을 그려오며 많은 그림들이 쌓였다.

작업물들을 모두 꺼내어 벽에 걸 수는 없지만, 당장 붙이기 좋은 사이즈들의 그림들을 벽에다 마구 붙였다. 그림들을 붙이고 보니 내가 잘해온 것과 더 성장해야 하는 것들이 눈에 보였다.


언니 또한 자신의 바느질 작품들을 조망하듯이 바라보면서 생각보다 바느질 작품들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엔 엄청 많은 것 같은데도 더 만들어야 한다며 앞으로 만들 작품들을 구상하곤 한다.



벽에 그림을 붙인 뒤 그림 속에서 영감을 받아 큰 배경이 있는 작품을 그렸다.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작업하는 동안 누가 그리는 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리기 싫다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 붓을 내려놓으면 분명 이 그림은 앞으로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자꾸 한계에 부딪혔지만 매일 1시간, 2시간씩이라도 작업을 진행했다. 그와 더불어 내 책상도 함께 어질러졌다. 내 머릿속을 보는 것 같았다.



올해 내내 이어져오는 풍요하리 퀼트 수업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지런한 수강생분들은 우리 공방에 발걸음 하신다. 열심히 원단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경이로움을 느낀다. 물론 언니가 퀼트 작품을 창작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느끼는 부분이고, 그 작품들을 수강생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완성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성장한다. 


손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 뜯은 뒤 바느질하기도 하고 더 예쁜 땀을 수놓기 위해 천천히 바늘땀 하나에 집중한다. 이내 작업 책상은 어질러지고 뒤죽박죽이 되지만, 그녀들의 작품은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완성되어 간다.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 많은 요즘, 작고 단순한 행위가 삶을 회복시킨다. 부디 수강생님들이 퀼트 수업 시간에는 마음이 평화로워지길 어지러운 생각들은 어질러진 책상 위에 모두 버려두고 가시길 바라본다.




창작할 때, 작업에 집중할 때는 책상이 쉽게 어질러진다.

나는 평소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주변을 정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삶의 불안 요소를 잠재워줄 것만 같았다. 정리해야만 하는 일상과 주변이 어질러지는 창작자의 일상 사이에서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결국 창작할 때는 주변을 어지럽히자는 결론을 내렸다.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머릿속이 어질러진 것처럼 나의 주변도 어질러지면서 함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자매의 창작 세계가 만들어지면서 어지러운 공간 속에 질서가 생기고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나면 머릿속도 잠잠해진다. 어질러진 공간 속에서 창작의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주변이 정돈되지 않고 너저분해도 잠시 내버려 두자.

그 속에서 우리의 세계는 확정되고 정리되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싶다. 작은 노트 속에 만난 고양이 그림에도 풍요하리 캐릭터를 그릴만큼 애정이 가득한 나만의 창작 영역을 존중해주고 믿어주자. 

그러다 보면 다시 창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고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행복을 잠시 만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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