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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Mar 25. 2022

첫 그림 강의, 더는 회사원이 아닌 그림 그리는 사람

이제는 수채화 화가 풍요입니다.

퇴사한 지 2년 3개월이 됐다. 체감상 3년은 더 된 것 같은데 아직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근래에 정말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2년 3개월이라는 기간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고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마 이번 글 이후로는 ‘퇴사 후 며칠’이라는 말은 쓰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내게 중요한 건 [퇴사한 사실]보단 [그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겐 회사보다 더 중요한 내 일이 있다. 그림으로 먹고살고, 누군가와 소통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


퇴사 후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고 버렸으며 포기했다. 그 과정은 매우 지난했고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림 또한,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기에 절대적인 숙련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을 몰랐던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빨리 ‘성공’을 할 수 있을지,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에만 혈안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참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놓지 않았던 건 붓이었다.

얼마 전 엄지손가락을 만졌다가 굳은 살을 발견했다. 도대체 검지와 맞닿는 이 부분에 굳은살이 왜 생긴 건지 곰곰이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무심코 연필을 잡아보았더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연필, 붓과 함께한 시간 동안 굳은살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열심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더 열심히 하지 않는 나를 책망만 했었는데, 나는 이미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달고 사는 어깨 결림도 손목 뻐근함도, 허리가 다쳐서 앉아 있지 못한 순간에도 누워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왜 이 작업이 이리도 좋은 걸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인정하고 나서 새로운 기회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내게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작업실 환경을 정리하고 그리고 싶었던 것들은 다 그려댔다.


그림 주문도 다시 받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꾸준히 그려온 반려동물 초상화가 백여 점이나 되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정리하여 새로운 계정으로 관리했다. 신기하게 주문을 해주는 분들이 계셨다. 이벤트까지 열고 나니 밀린 주문처리를 하느라 비타민C를 하루에 두 개씩 먹어가며 버텼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림책 작업도 시작했다. 2년 전 스토리보드까지 진행된 고슴도치와 선인장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수채화로만 작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그림을 그리려니 마음의 저항감이 꽤나 컸다. 그래도 잘 이겨내리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도 작업하는 중이지만 몸이 고된 것 외에는 즐거운 작업이다.




포트폴리오로 사용 중인 인스타그램도 조금씩 순항 중이다. 가장 공을 들이기도 했고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홍보인데 인스타그램으로 꾸준히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곧 3,000 팔로우가 되면 어떤 이벤트를 해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과 수채화 여행 드로잉을 주제로 한 강의를 다음 주에 진행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경험들이 나를 그림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짧은 강의이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잠시나마 선물해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앞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나와 내 주변을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근래에 내가 해냈고 마주한 일들이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언니와 함께 하는 풍요하리는 바느질과 그림으로 하루를 빼곡히 채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눈다. 이왕이면 새로운 영감을 주면서,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매일을 채워간다.


이거면 됐다. 나와 내 주변이 함께 성장하고 매일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것. 조금 지치고 힘들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신기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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