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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Jan 12. 2022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즘

약 2년의 관계 정리 후 내게 남은 건 비워진 마음이다.


  오늘도 스마트폰은 조용하다. 간혹 울리는 메신저 알람에 잠시 눈길을 주지만, 광고인 걸 알고 나면 이내 다른 일에 집중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매일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와 지인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이 단출한 인간관계가 익숙해지고 있다. 뭘까? 과거에는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문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또, 허전한 마음이 들면 연락처를 뒤적거리며 누구에게 전화해볼까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봐도 이젠 정말 괜찮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가끔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고 벅차다는 느낌까지 들곤 한다. 문득 새벽에 고독이 찾아와도 누군가에 대한 허전함보다는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기 위한 고민이 길어진다.


  사회적 관계의 집합체인 조직생활을 떠난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나는 이를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즘’이라고 생각하는데 불필요하게 유지하던 인간관계, 혹은 서로를 하나의 도구로서 대하던 관계의 종지부를 찍고 나니 이렇게 된 것이다. 나도 순수하고 밝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어느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알아차리고 비유도 잘 맞췄으며 가식적인 립서비스도 별 거부감 없이 했기 때문에 누군가와 다툰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이 중 일부는 특정 사회적 관계에서만 기능하는 관계였다는 것을 말이다.


  퇴사 후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지독하게 시달렸다. 고의건 고의가 아니 건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를 주며 성장통을 크게 겪었다.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이 알고 보니 나를 험담하고 있었다던가. 나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면서 가식적으로 대하고 웃어주었던 것들 말이다. 또 사회적 틀 안에서 만났던 어떤 이는 사회적 틀을 벗어난 이방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앞에서는 박수를 치고 용기 있다는 말로 치켜세웠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과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치열하게 나의 빈틈 속 균열을 찾기 위해 혈안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작년까지 이어져 왔고 이내 나는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쪽에서 먼저 정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나 스스로를 할퀴는 일보다 어렵게 느껴져 왔다. 타인에게 쓴소리를 하느니 나를 낮추거나 화제를 전환하는 게 나은 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이 관계를 더 악화시키고 있었다. 인간관계를 하면서 한 사람이 스러져간다면, 건강한 관계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맞지 않는 서로를 위해서 각자의 갈길을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이건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원치 않는 요구에 거절할 줄 알고 내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할 줄 알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약 2년간의 관계 정리 후 내게 남은 건 비워진 마음이다. 어지럽게 꽉 찬 쓰레기통 같던 마음속에 빈 공간이 생겼고, 이로 인해 조금 더 수월하게 누군가를 맞이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올해의 인간관계 미니멀리즘 목표는 다음과 같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에 너무 애태워하지 말며, 새롭게 만나는 이들에게 반갑게 인사할  있는 사람이 되는 .
인간관계 여유라는 향기를 덧대는  해를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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