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독학러의 3년 차 일기
2020년 1월, 브런치에 처음 작가 등록이 되고 지금까지의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도 그림에도 큰 재능이 없던 것 같던 나는, 무작정 좋아한다는 이유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업로드했다.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자의식 과잉이 이뤄낸 결과로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한 느낌마저 드는 무모함이었다. 겁 없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길이 나있지 않은 거친 풀숲을 한 걸음씩 내디뎠다. 덤불에 걸려 넘어지고 가시에 생채기가 나는 것 같은 일상이 지속됐다. 상처에 상처가 덧입혀지고 상처엔 솔솔 낫는 연고를 바르는 일을 반복하게 되면서 드디어 내게도 ‘무뎌짐’의 단계가 왔다. 지금의 일상이 익숙해진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가득 채워졌다. 뭔가를 가득가득 집어넣어서 터질 것 같은 매일은 아니었지만, 부단히도 고뇌하며 스스로와 싸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 회사를 3년 이상 다니지 않았다.
총 세 번의 직장생활, 가끔 내 커리어가 왜 이렇게 됐지 싶을 때도 있지만, 나름의 사연이 존재하므로 ‘끈기가 부족하다’ 따위의 내면의 비판은 집어치워버렸다. 인생의 경험상 3년의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과 조직에 나름 익숙해지는 시간이다. 그 중요한 3년의 시간들을 다 채우지 못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일을 하면 할수록 허기진 느낌, 삶의 의미를 점차 잃어가는 것 같고 오늘의 내가 생동하지 못하는 것, 내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일이 그만큼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일’만에 내가 스스로의 삶을 잘 살아가게 하고 주도할 수 있는 마스터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일’을 했고 직장생활과의 싸움에서 백기를 들고 퇴사해 버렸다. 일련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패배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하며 열패감에 시달렸다.
퇴사 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던 내가 최초로 3년 동안 지속하고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이 모든 일과 일상들’이다. 위에 서술했던 감정과 생각은 ‘일’이라는 영역 하나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삶의 태도’와 관련한 질문들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그게 내 재능과 연관 있는가 하는 표면적인 문제가 아닌, 삶에 대해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고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관련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는 일상과 일을 포함한 전반적인 태도가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최근 3년의 시간은 귀중하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활동 제약과 돈벌이가 잘 되지 않던 나날이 이어졌음에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삶의 이유를 찾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을 찾고 그 속에서 집중하며 살아가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고꾸라질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면서 내가 이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한 치 앞만 보이는 상황이었으니까. 곧 제자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버텼다. 버티는 과정에서 그림 실력이 늘었고 인간관계가 정리됐으며 내가 만든 그림과 소품이 예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과정이 어떤 이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또 내겐 보람된 순간을 안겨주고 있다.
다음 발행 글에서는 혼자 3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실력에 있어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써 내려가보려고 한다. 아직 수행 단계라고 확신하지만, 확실한 변화들이 눈에 보인다. 특히 나의 손놀림말이다.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 브런치 글의 초안을 작성하며 상쾌한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아주 특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