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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Jan 28.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도감 - 1

그녀의 첫 바느질 소품_원숭이 인형 겸 파우치 


[두 자매가 함께하는 바느질공방 '풍요하리'의 바느질 작품썰 시리즈입니다.]


2017년,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의 이야기. 

'언제 적 만들어진 펠트 작품일까?'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지난해들을 세어보다가 이내 놀라고 말았다. 6년 전 작품이 요즘 만든 작품보다 이렇게 더 정교할 수가 있을까. 팔불출 같은 동생 마인드로 적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원숭이는 정말 정교하다. 


지금보다 딱 6년만큼 밝았을 시력, 설익은 기술이지만 차분함과 꼼꼼함으로 무장한 손끝에서 만들어진 원숭이 작품. 지금의 하리는 바늘땀을 이때처럼 무서우리만큼 하지 않는다. 대신 만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겹지 않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해 가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이 원숭이는 더욱 희소성이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원숭이 얼굴에 약 1mm 간격으로 바느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풍요하리 바느질도감 첫 번째 글감이 될만하다.




그를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 보자면, 전체적으로 우리가 흔히 고급 부직포라고 알고 있는 펠트 소재이다. 심지어 보풀방지 펠트라 오랫동안 사용하고 시간이 지나도 보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원숭이 몸 전체가 펠트 소재로 되어 있어 탄탄한 바디를 지니고 있다. 원숭이 어깨를 보면 약간 승모근이 있어 보이는 데 사용한 소재로 인해 더욱 단단해 보인다. 얼굴은 보드랍고 폭신한 느낌의 울펠트를 사용했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 오닉스 원석이다. 얇은 한 줄의 눈썹과 빙그레 웃는 미소가 정겨움을 자아낸다. 


옷에 달린 귀여운 단추는 바느질하는 자들의 손바닥 땀을 고이게 만들 정도로 작은데, 전체적인 비례에 잘 맞아서 진짜 옷에 기워진 느낌이다. 이 새끼손톱보다 작은 단추들은 멜빵 청바지에 옹기종기 매달려있다. 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앞주머니가 야무지게 크레파스 단추와 함께 달려 있다. 여기서 혀를 내두른 점은 크레파스와 같은 색 실로 마치 그림을 그린 것 같이 바느질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이 작품은 대체 어느 정도 꼼꼼한 사람들이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지면서 극강의 난이도라고 느껴진다. (아마 첫 작품이라 영혼을 끌어모아 만든 것이 확실하다.) 앞 디테일을 다 적기에 빠듯한 느낌이라 원숭이의 뒤태로 넘어가 봐야겠다.


나같이 대충 사는 인간은 뒷면을 통으로 처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얘는 다르다. 뒤통수도 봉긋하고 멜빵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 뒤에 지퍼까지 달려 있다. 이 안에 작은 동전이나 소품들을 담아서 실용성을 높이고자 했던 것 같다. 지퍼 고리에는 가죽 끈과 예쁜 바나나 단추가 달려 있다. 언니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재료비는 대체 얼마나 들었던 거야?"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저 전시용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업용으로 의뢰를 받고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모티프로 기본 디자인을 잡고 실용성을 높여 작품의 매력도를 높이고자 했던 것 같다. 언니 하리는 6년 전 과거를 회상하며 부암동이라는 장소를 떠올렸다. 나와 함께 공방을 하기도 훨씬 전, 인생 첫 바느질 수업을 준비하며 느꼈을 설렘과 긴장감이 내게 전해졌다. 샘플 작품을 들고 낯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계단에서 작품 사진을 찍었다는 언니. 홀로 부암동 길을 거닐며 수공예 카페에 들러 또 다른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열정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 사진은 고스란히 수업 소개 포스터에 사용되었다. 지금처럼 갖춰진 공방도 없었던 시절 혼자 집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리가 바느질 창작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딘 시점이다. 그 뒤로 무수한 바느질 작품들이 만들어졌으니 이 원숭이는 풍요하리 소품들의 '조상격'일지도 모른다.


뿌리가 정교하니 다음 작품들도 장난 아니다. 초보자인 동생 풍요는 처음 공방을 함께하기 시작했을 때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은 끝까지 작품을 만들어갔다. 언니 하리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서 수업을 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아마, 언니 스스로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잠재적인 능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뒤로 6년간 수업을 지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풍요하리 바느질도감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던 날 밤, 대충 숫자를 헤아려도 최소 50가지가 넘는 바느질 작품들이 무수한 글감을 가져다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바로 이 원숭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첫 순간을 기억 속에 아로새겨준 풍요하리의 처녀작이자 바느질도감 제1호 작품이다. 


※ 아래는 언니 하리의 작품을 동생 풍요가 수채화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 손으로 그린 도안으로 작품을 만들고 그걸 또 손으로 그린 순환 구조의 풍요하리 바느질 공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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