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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사부작 미싱으로 가방을 만드는 두 자매 이야기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아니. 대학나와서 미싱할래!

by 풍요

짧고 가늘게 느껴진 설날이 지난 후 풍요하리는 숨 고르기를 끝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부자재를 사러 동대문도 마음대로 다닐 수 없어 답답했던 찰나. 공방에 발이 묶인 두 자매는 작품 완성과 온라인 판매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용적이면서 디자인까지 잡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요즘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뭐든 쉬운 일은 하나도 없고 무언가 창작하고 만들어내는 일은 경이롭고도 고통스럽다.


풍요하리 인스타그램 인사이트 분석을 보면 단연 가방 작품이 조회수가 높다. 아무래도 가방은 일상생활에 빼놓을 수 없고, 엣지 있고 있어도 또 갖고 싶은 무엇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방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바느질 중급 이상인 하리는 실제 판매용 가방, 동생 풍요는 미싱 연습용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언니 하리는 평소 준비하던 플라넬 원단을 이용하여 패치워크 가방을 디자인했다.


마치 당구 큐대를 잡듯이 수성펜을 잡은 그녀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작품이 아직 완성 전이기 때문에 안감 패턴을 그리는 모습을 가져왔다. 하리는 창작자가 된 이후 본인의 엄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자세히 보니 엄지가 옆으로 더 자란 것도 같다. 재단하고 힘을 많이 주는 작업 특성상 약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요즘 풍요하리는 고양이에게 푹 빠져 있다. 창작자의 관심사는 작품으로 발현되는 것인지, 온통 고양이를 모티프로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그 사이 풍요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리넨이 좋아! - 네스맘 저]에서 본 리넨 가방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공업용 재봉틀로는 기본 노루발에 일자 박기밖에 할지 모르는 그녀는 눈만 높은 탓에 초보자에겐 어려운 가방을 도전했다.


사실 풍요하리의 부모님은 오랜 세월 의복 만드는 일을 해오셨다. 그래서 풍요하리는 사람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라는 말에 대해 늘 의구심을 가졌다. 그리고 작년 조영래 작가의 [전태일 평전]을 접하고 나선 부모님이 하시는 일이 결코 쉽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전태일 열사가 살던 배경은 70년대이기 때문에, 부모님보다 조금 윗세대다. 그럼에도 무심코 내뱉는 “공장 가서 미싱 할래?”라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자본주의에 점철된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풍요하리 제작소에는 공업용 미싱이 있다. 미싱을 조금씩 연습하던 풍요는 직접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은 엄마의 손을 빌려 완성했다.




책을 보고 따라서 무언가 만드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서 느낀 점은 풍요하리 제품 튜토리얼은 번거롭더라도 동영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하리는 풍요의 첫 가방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공방 단골손님인 까망이(올블랙 고양이)를 브로치로 만들어주었다.




까망이는 눈이 별빛이지만 길고양이 특성상 눈매가 참 매섭다. 하리는 그 특징을 잘 살려서 펠트로 브로치를 만들었다. 다소 심심하고 시원한 느낌의 리넨 가방에 따뜻하고 폭신한 소재인 브로치를 장식하니 한껏 풍요로워진 느낌이 든다. 어서 하리의 가방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며칠간 혼신의 힘을 다 해 만든 그녀의 작품이 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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