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풍요를 정하기 위한 우리들만의 리그
유급 노동을 하지 않은지 약 두 달. 다들 이때쯤이 되면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하다. 불안한 마음은 회사에 있을 때도 극도로 겪어봤으니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두 달간 인생 버킷리스트는 맘껏 이뤄보고 있으니 시국은 어지럽지만 내게는 호시절이다.
그래 봤자 몇 개 안 되는 일이지만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의 행복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 일들 중 첫 번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양이를 마주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다닐 때도 그림은 그렸고, 고양이도 스쳐 만나봤다. 하지만 고양이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심지어 구청에서 안 하던 환경청소를 몇 년 만에 한 덕에 도서관 옆 고양이 아지트가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도서관의 이름을 따서 지은 엄마와 아기 고양이는 앞마당에서 볕을 쬐곤 했는데, 무척이나 귀여웠다. 하지만 청소 후 둘 다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 뒤로 한 번도 볼 수 없게 되니 상실감이 컸다.
고양이 사랑은 공방을 운영하며 극대화됐다. 하도 많은 고양이들이 공방을 찾아준 덕분에 공방 공식 고양이에게 선사할 [풍요]라는 이름을 누구에게 지어줄지 고민이 참 많았다.
풍요 후보군으로는 두마리의 냥이가 거론됐다. 첫 번째 후보는 까망이(올블랙 냥이로 알았지만 후에 배 쪽 흰털을 발견함)였다.
이미 내 글 속에 등장했지만 이 고양이는 좀 남다르다. 사람같이 늠름(?)하고 우두머리 기질이 있다. 하지만 곁을 잘 안 준다. 우리가 놀아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놀아준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왠지 이 고양이는 우리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후보는 치즈냥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앞발 펀치를 날리던 이 녀석은 굉장히 경계심이 많고 예민하다. 만난 지 한 달은 됐는데 아직도 만나면 앞발 펀치를 날린다.
두 마리 중 누구를 풍요로 정할까 고민하던 언니와 나는 결국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자주 우리를 찾아와 준 치즈 냥이에게 [풍요]의 이름을 선사했다. (고양이들은 관심도 없는 우리들만의 리그......)
우리 공방에서 사는 냥이는 아니지만 자주 놀러 와 준다. 우리가 밥 먹이고 놀아준 게 도움이 되는지 처음 봤을 때 보다 더 큰 느낌이다.
처음 봤던 이때. 확실히 몸집이 작고 귀여웠다. 청소년 느낌의 냥이였다. 요즘은 좀 띵띵해졌는데, 겨울이라 수분 섭취가 적어서 부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니와 나의 마음을 홀딱 뺏어간 풍요는 아직도 가깝지만 먼 당신 놀이를 하고 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당장 우리는 섭섭하지만 길고양이들에게는 좋은 방어기제일 테니까.
기쁨과 귀여움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풍요 덕분에 나는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달성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직접 그리는 것. 언젠가 삶이 퍽퍽해졌을 때 고양이 그림 한 장 그리며 숨 쉴틈을 마련해두고자 오늘도 드로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