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진짜 내가 원하는 걸 하게 되겠지
다대기 팍팍 넣은 순대국밥, 고추기름 듬뿍 넣은 쌀국수, 기본보다 매운 단계로 요청한 마라탕, 고춧가루 뿌린 짬뽕, 다른 부재료 없이 정석으로 끓인 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때, 전 날 술을 마셨을 때, 날이 흐릴 때, 쌀쌀할 때, 심신이 지쳤을 때 뜨겁고 빨간 국물 음식이 당긴다. 거의 매일 생각난다는 뜻이다. 평일엔 대체로 기분이 좋지 않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종일 부대끼는 몸과 마음이 즐거울 리 없다. 미세먼지로 뿌연 봄, 습하고 비 오는 여름, 찬바람 부는 가을, 손발 시린 겨울, 모든 날 뜨겁고 빨간 음식을 먹을 이유가 있다.
기력이 쇠할 땐 순대국밥, 지긋지긋할 땐 쌀국수, 화날 땐 짬뽕, 답답할 땐 라면, 그리고 울적한 날엔 마라탕이다. 울적한 기분은 보통 뭔가 불만족스러울 때 찾아온다. 그럴 땐 내가 원하는 재료만 골라서, 내가 원하는 맵기로 만들어주는 마라탕을 먹는다. 오늘의 한 끼리도 후회 없이, 100% 만족스럽게 먹고 싶어서.
이직 전 짧게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내게 중국은 왠지 확 마음이 끌리는 나라는 아니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머무는 내내 날이 흐려서 뿌연 황토색 도시 같았다. 건물이 너무 높았고, 식당도 넓고 호텔도 넓고 도로도 넓었다. 밤에 눈부시게 밝고 높은 건물들을 올려다보면, 내가 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중국에 가고 싶다. 오로지 마라탕을 먹기 위해서. '차라리 일본을 갈 걸 그랬나?' 생각하던 차, 내 혀에 꼭 맞는 마라탕을 먹은 그날, '그래도 중국에 와보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그 가게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혼밥 손님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1인용 냄비. 자유롭게 조절 가능한 매운 단계. 화자오와 고추, 기름 범벅으로 펄펄 끓는 시뻘건 국물. 싱싱하고 큼직한 야채와 해물. 청결한 소스바에 진열된 걸쭉한 땅콩소스와 신선한 다진 마늘. 다양하게 구비된 맥주와 고량주. 용도별로 마련된 국자와 거름망. 테이블마다 비치된, 어떤 재료를 얼마나 익혔을 때 가장 맛있는지 알려주는 안내판.
마라탕에 굴과 전복, 양고기를 넣어 먹고 고량주까지 마셨는데 2만 원 정도가 나왔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양껏 먹은 지라 배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속 편히 무사히 지나갔다. 뒤끝까지 개운한 정말 완벽에 가까운 가게였다.
중국을 떠나기 전 다시 그 마라탕이 먹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마라탕집에 다시 가지 않았고, 다른 무한리필 1인 훠궈집에서 밍밍한 마라탕을 먹고 귀국했다.
그 완벽에 가까웠던 가게는 직원들도 너무 친절해서, 먹는 내내 옆에 서서 부족한 게 없나 살펴주었다. 육수를 몇 번이고 추가해 주고 재료 고를 땐 커다란 쟁반을 들고 뒤에 서 있었다. 주방장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해물 재료를 적극적으로 권했는데, 가격은 안 쓰여있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재료를 고를 때마다 조금 불안했다. 그래서 그 가게를 다시 가지 않았다. 중국은 넓고 널린 게 훠궈집이니 맛있는 가게가 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가게에 다시 방문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덕분에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무한리필 훠궈집도 가봤고, 역시 그 가게가 맛있는 곳이었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 맛있는 훠궈집도 찾아보고, 정 그리우면 다시 중국에 가면 된다.
중국에 다녀온 후 이틀 뒤 나는 새직장에 출근했고, 마라탕을 더 자주 먹는다. 땅콩 소스는 물 탄 것처럼 묽고 얼얼한 맛도 부족하다. '달라달라 중국 마라 차원 달라'병이라 해도 할 말 없다.
이직 후 나는 종종 울적하다. 겉보기엔 합당한 이직이다. 더 큰 회사, 체계 잡힌 시스템, 더 높은 연봉, 더 높은 직급, 새로운 도전이 될 사업. 이직 후에야, 비로소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님을 깨닫는다. 전 직장이 완벽하지 않지만 나와 꽤나 잘 맞는 곳이었음을 깨닫는다.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퇴사할 만해서 퇴사했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기회를 잡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아쉬웠을 테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급히 재취업을 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긴가민가 했지만 일단 찍어 먹었다.
언젠가 똥인지 된장인지 안 찍어먹어 봐도 구분하는 날이 오겠지. 굳이 찍어먹어 보지 않은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내게 이로운 것을 쏙쏙 선택하고, 맞지 않는 것을 알아보고 거절하는 지혜가 생기겠지. 그래서 원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게 되겠지.
연휴에 출근해서 점심에 마라탕 사 먹은 얘기를 한다는 게 그만 길어졌다. 울적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