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많이 바쁘신 거 알아서 조심스럽지만, 퇴사 관련해서 면담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야근, 주말 출근, 과중한 업무와 압박감.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너덜너덜해진 마음. 너무 변해버린 회사의 비전과 방향성. 연봉과 복지에 대한 불만.
이런 얘기는 쏙 빼고, 웃으며 면담을 마친다. 가장 손쉬운 퇴사 방법은 이직이다. '나 네가 싫어졌어' 보다 강력한 이별 멘트는 '나 다른 사람 생겼어'니까.
퇴사일이 확정되고, 팀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며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퇴사 후 이직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있다. 집에서 빈둥거리다 해외여행이나 갈까, 항공권을 찾아본다. 에이, 귀찮다. 비행기도 불편하고. 침대에 누워 릴스랑 숏츠나 봐야지.
문득 로밍을 안 하고 해외에 가면, 전화나 문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게 떠오른다. 갑자기 부지런해진다. 가자, 어디든 한국만 아니면 돼!
며칠 후 나는 인천국제공항에 낡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다. 좁은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고 영화를 본다. 수하물을 찾아 택시를 잡고 호텔로 들어선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식당에 들어가 볶음밥과 맥주 한 병을 주문한다. 일기를 쓰려고 공책을 편다. 해방감, 외로움, 다가올 시간에 대한 걱정, 괜히 코 끝이 시큰하다.
이상 오늘도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할 사람의 상상.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늘 목구멍에 걸려있다. 이 회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 이번 달은 버텼는데 다음 달은 뭐 어떻게 버텨야 하지? 당장 다음 주는?
다 때려치우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나날이다. 이 구직난에 출근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여기도 지옥이고 밖도 지옥이라면, 그나마 익숙한 지옥이 나아. 때려치우면 어쩔 건데? 동료들도 좋고, 대표도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힘들 때마다 그만두면 앞으로 아무 일도 못해. 다 이 정도는 힘들어.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쉬운 게 어딨어.
그렇지만 마음 한켠이 계속 무너진다. 보람차고 충만한 사건이 가끔씩 생겨야 버티는데, 자꾸 무너지기만 한다. 버티면 더 강해질까. 아니면 더 무너질 뿐일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해 일단 출근하기로 한다. 무너질 게 확실하다고 생각할 때, 그제야 난 비로소 퇴사 면담을 하고, 해외여행을 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