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에서 동작구로

그리고 가본 적 없는 중국으로

by 정의로운 민트초코

최근 이사를 했다. 그 와중에 회사일이 너무 바빴고, 생리일이 겹쳐 몸도 좋지 않았다. 이사도, 회사일도, 생리주기도, 이 중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사 하나 빠진 상태로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애썼다. 이사 당일도, 그다음 날도 중요한 미팅이 연달아 있었다. 뒤죽박죽인 집에서 어찌어찌 씻고, 옷을 주워 입고, 화장을 했다. 퇴근 후 돌아온 집은 여전히 엉망진창. 수건걸이 위치, 칫솔 거치대, 세면대 높이까지 모든 게 낯설었다.


이사 전후엔 도시락도 쌀 수 없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동거인 덕분에 냉장고엔 밑반찬이 가득하고, 회사에도 도시락을 싸가곤 했다. 부지런한 동거인은 뚝딱뚝딱 냉장고를 채웠지만, 녹초가 된 저녁에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긴 무리였다.


우린 관악구민에서 동작구민이 되었고, 근처엔 중국 식료품점과 중국 식당이 많았다. 짜장면과 짬뽕이 메인인 한국식 중국집이 아닌, 사장님부터 중국인인 그런 중국 식당. 이삿날은 짜장면이라며 근처 식당을 찾았는데, 동거인은 휘황찬란한 한국식 중국집이 아닌 소박한 식당을 택했다. 물론 그곳의 짜장면은 동거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먹은 동파육이 입에 맞았는지, 다음 날엔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중국 식당을 찾았다.


이미 술을 한 잔 걸친, 한국어가 서툰 사장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식당 리뷰를 봐둬서 사장님과 한국어로 소통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손짓 발짓으로 메뉴를 주문했다. 중학생 시절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는데, 정말 한 마디도 쓰지 못했다.


볶음면과 꿔바로우, 그리고 중국술을 주문했다. 사장님은 술이 남으면 냉장고에 보관도 해줄 수 있다며 웃었다. 750ml짜리 위스키 보틀도 아니고, 250ml짜리 작은 술을 주문했는데 킵도 해준다라. 유쾌했다.


동거인이 앉은자리에선 주방장님이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동거인은 여긴 무조건 맛있을 거라 확신했다. 사장님이 잠깐 외출한 사이 주방장님이 음식을 가져다줬다. 한국어가 서툰 주방장님은, 볶음면엔 고추기름을 살짝 넣으면 맛있고, 꿔바로우는 일단 통으로 먹고 나중에 잘라서 먹으라고 당부했다.

다음 날 먹어도 맛있었던 꿔바로우
두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볶음면

8,000원짜리 볶음면은 중국집 쟁반짜장(2인)에 버금가는 양이었다. 얼마 전 23,000원짜리 파스타를 먹은 동거인은, 우리가 먹는 이 감칠맛 넘치는 볶음면이 8,000원이라는 사실에 감동했다. 꿔바로우 격이 다르다는 식당 리뷰를 봤는데, 역시 지금까지 먹었던 꿔바로우 중 가장 맛있었다. 양이 워낙 많아 남은 음식은 포장했는데 다음 날 먹어도 맛있었다.


밥을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 우린 다음에 이 식당에서 뭘 먹을지 고민했다. 토마토 달걀볶음도 먹어야 하고 지삼선도 먹어봐야 한다. 주방장님이 만든 음식은 뭐든 맛있을 테지.


수건걸이 위치, 칫솔 거치대, 세면대 높이 모든 게 낯선 새 삶터.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식당. 너무 익숙하고 골치 아픈 일상 속 낯설고 흥미로운 일상이 다가왔다.

아, 오이무침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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