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고 싶다기보다

출근하기 싫은 걸지도

주말을 포함해 6일의 설 연휴가 끝났다.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지만 기차표가 없어 포기했다. 서울 어디 맛집이라도 다녀오자며 리스트를 짜고 그 어디도 가지 않았다. 집 근처 공원과 약수터만 오갔을 뿐인데 연휴가 끝났다.


공항 출입국 수속으로 시작하는 해외여행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붐비고 좁은 기차, 고속버스의 도로정체도 머리가 지끈하다. 맛집까지 가기 위해 세수를 하고, 옷을 껴입고, 화장을 하는 루틴도 지겹다.

때문에 기왕 씻고 출근한 김에 약속을 잡고, 여행도 가고, 맛집도 간다. 진짜 여행을 좋아하면 시간만 나면 여행을 갈텐데. 돈 있고 시간 있어도 침대 위가 최고다.


요즘 내게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은 '출근하기 싫다'는 말의 유의어다. 현생을 살기 버겁고 지겨워서 떠나고 싶은 마음, 출근 빼고 다 하고 싶은 마음이 버무려져 나는 늘 여행을 갈구한다. 막상 시간이 나면 가지도 않으면서.


어디든 가보고 싶던 10대 시절의 나는 여행을 좋아한 게 맞다.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는 방글라데시와 쿠바였고, 어른이 되면 세계 여행을 하겠다 다짐했다. 얼마나 멀던, 위험하던 상관없이 새로운 곳이라면 무조건 가보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잠자리가 불편하고 먹을 게 빈약해도 상관 없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조직에 소속되고 지켜야 하는 일상이 생겼다. 하루하루 책임을 다하기 지쳐,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그라들었다. 새로운 것에 적응할 에너지가 없어서일까, 편하고 익숙한 것을 찾게 되었다.


그럼에도, 언젠가 퇴사를 하면 긴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긴 연휴를 마치고, 여행을 갈구하는 마음을 담아 점심 도시락으로 야매 나시고랭을 쌌다. 날이 추워서 따뜻한 나라에 가고 싶다. 이렇게, 오늘도 퇴사와 여행을 갈망하며 산다.


야매 나시고랭 : 양배추, 양파, 숙주, 파, 당근, 밥, 달걀. 소스는 치킨스톡, 간장, 참치액젓. 달걀 후라이에 통후추와 바질을 뿌리면 한층 여행 기분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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