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5, 라오스에서 쓴 일기
안녕. 난 지금 메콩 강가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어. 오늘 밤에도 한국에 돌아가는 꿈을 꿨어. 여행 중 매일 꿈을 꾸는데, 주로 한국에 돌아가는 꿈이야. 잠에서 깨고 아직 여행이 남아있다는 걸 확인하며 소중히 하루를 보내야겠다 다짐해.
어젠 하루종일 일진이 사나웠어. 뚝뚝 기사들 중 드물게 바가지 씌우는 사람이 있거든. 그렇지만 내가 만난 사람 10명 중 9명은 나에게 친절했어. 화폐단위가 낯선 내가 실수로 돈을 더 지불해도, 싱긋 웃으며 돈을 돌려주는 게 대부분이야. 오히려 깎아주기도 해.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미 충분히 기적이고 행운이란 마음으로 바가지 씌우는 이들을 끌어안아.
그런데 어젠 좀 달랐어. 적의, 모멸감을 느꼈거든. 여행자를 싫어할 순 있어.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 낯선 곳에 홀로 떠도는 여자애의 기분, 그 두려움에 공감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건넬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
그렇지만 이곳에서 드물게 샘물처럼 맑은 눈빛을 가진 이들을 만났어. 아무 계산 없이 낯선 외모에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여자애를 순수히 환대하는 이들, 얼굴에 착함이 묻어나는 사람들.
참파삭에서 함께 썽태우를 타고 온 아이의 아버지가 그랬고 팍세에서 날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준 뚝뚝 기사가 그랬어. 타켁으로 넘어오는 버스 옆자리에서 밥을 권하던 할머니, 버스 차장이 그랬어. 나 손금 잘 보잖아. 아이의 아버지 손금을 우연히 봤는데 진짜라니까.
그 얼굴들을 기억하고 싶지만, 어쩐지 그들 앞에서 휴대폰을 들이대는 건 죄를 짓는 것 같아 그만뒀어. 원래 진짜 마음에 남는 건 기억에 남을 거야.
이미 많은 이들이 변했듯, 이곳은 더 변하겠지. 이곳이, 그들이 영원히 순수하고 아름답게 남길 바라는 것도 나의 이기심일 거야. 전에 없는 결핍과 욕망을 심을 것도 나와 많은 여행자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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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의 일기는 여기서 끝났다. 대학생이던 나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홀로 2주 간 동남아 여행을 떠났다. 그날의 일기가 왜 여기서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다른 귀하고 소중한 것에 몰입했기 때문이겠지.
2024년 12월,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귀하다. 사랑스럽다. 그때 일기를 써내려 간 대학생은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다. 자신이 원했던 건 거의 다 이뤄가며.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나라가 너무 많은데, 내일 할 일이 참 많은데. 일기를 읽다 보니 라오스에 가고 싶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는데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