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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로운 민트초코 Oct 28. 2024

가끔씩 함께 여행가는 엄마와 딸-여수편

가을 초입 어느 주말, 1박 2일로 엄마와 여수에 다녀왔다. 추석 연휴 때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단 둘이 속초에 다녀온 이후 한두 달에 한 번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우리의 역할은 이렇다.

- 숙소 및 교통 예약 : 나

- 현지 식사비 지불 : 엄마

- 동선 및 식당 찾기 : 나


여행을 떠나기 전 부터, 엄마는 어디에 어떻게 갈 지, 뭘 먹을 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나를 따라다니겠다고 선언했다.


신혼여행으로 국내 일주를 했던 엄마는 어쩐 일인지 여수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서 KTX를 타도 3시간은 훌쩍 넘는 거리. 1박만 하기엔 5만 원에 가까운 KTX 비용이 아쉽지만 바쁜 시기라 도무지 평일에 연차를 낼 짬이 나지 않았다.


결국 토, 일 주말 이틀을 이용해 여수로 향했다. 새벽 5시 8분 용산역을 출발해, 8시 10분 경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엄마가 꼭 가보고 싶다던 백반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근처에서 파는 쑥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백반은 물론 아이스크림까지 입에 쫙쫙 붙었다.


새벽에 길을 나선지라,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동도로 향했다. 우린 같이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 힘든 엄마는 갯바위에 앉아 사색을 했고, 보더콜리와 비슷한 활동량을 가진 나는 여기저기 걷고, 자전거도 타고, 자전거 상태가 시원치 않아 또 걷고, 다시 엄마가 앉아있는 갯바위로 갔다.

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숙소 근처에서 돌게장을 배불리 먹었다. 아마 지난 몇 년 간 먹은 게장보다 많은 양의 게장을 먹은 것 같았다. 10만 원 이내 가격으로 예약한, 10평 남짓 되는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숙소에 들어오며 봐둔 선어횟집에서 민어회와 전어회를 먹었다. 역시 대낮부터 아저씨들로 북적이는 가게는 실패하지 않는다. 묵은지가 기가 막혔고, 문어숙회가 사이드로 나왔다.


여수를 떠나는 날, 아침 겸 점심으로 서대회 백반을 먹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정겨운 빵집은 요새 잘 보기 힘든 바게트빵을 팔고 있었다. 여수에서 건어물이나 딸기찹쌀떡 대시 바게트 한 덩이를 샀다. 3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니 출출했다. 여수에서 매 끼니 해산물을 메인으로 식사를 했더니 배 속이 거의 수족관이었다. 해산물은 당기지 않아 샤브샤브를 먹었다. 주말에 먹은 게 과했는지, 월요일 점심은 아침과 점심을 걸렀다.


숨 가쁘게 바쁜 일터, 동료들의 연차 상신 기록이 올라오는 걸 보며 생각한다. 왜 나는 연차 쓸 여유가 나지 않을까. 다들 연차가 없다고 난리인데, 나는 맘편히 휴가도 못써서 엄청나게 많은 연차가 쌓여있을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퇴직한 엄마와 길게 여행도 못 가는 걸까.


다행히 엄마는 내가 아니어도 자주 훌쩍훌쩍 떠난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경주다. 다음엔 조금 덜 먹자고 다짐한다. 물론, 계획은 변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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