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을 퇴사 한 2023년 여름, 일주일간 베트남에 다녀왔다. 2019년 여름, 베트남 남부를 여행한 게 마지막 해외여행이었으니, 꼭 4년 만에 여권을 꺼냈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으레 '누구랑?'이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데, 나에게 여행은 당연히 혼자 가는 것이다. 괴팍한 여행 취향 때문이기도 하고, 고요히 홀로이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는 까닭에서다.
복잡한 관광지는 남이 찍은 사진을 보는 것으로 족하고, 종일 골목 구석구석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보낸다.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철푸덕 주저앉아 몇 시간을 보낸다. 길거리 음식을 좋아해서, 위생 상태엔 살짝 흐린 눈을 하고 이것저것 잘 주워 먹는다. 겁대가리 없던 시절엔 늦은 밤 공항에 떨어져도 괘념치 않았다. 숙소를 예약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따뜻한 물이 안 나오거나 에어컨이 없어도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골라 다녔다(그래서 항상 빈 방이 있었나). 도시를 이동할 땐 가장 저렴하고 낡은 버스를 탔고, 국경을 훌쩍훌쩍 잘도 넘으며 여권에 늘어나는 출입국 도장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때보다 조금 늙은 나는, 도저히 새벽 1시에 타지에서 택시를 탈 수 없었다. 지저분한 침대 시트 위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최저가 항공권을 포기하고 낮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고다에서 게스트하우스보다 몇 배는 비싸지만 깔끔한 숙소를 예약했다. 따뜻한 물은 기본이오, 욕조가 있는 숙소를 찾아다녔다.
그렇지만, 베트남에 도착하고 며칠간 우습게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곳에서 주위를 경계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고, 도시를 이동할 때 예상 외로 많이 긴장했다. 현지인들이 표를 끊는 버스터미널을 찾는 것이 어쩐지 피로해서, 호텔에서 벤을 예약해 도시를 넘어 다녔다.
가장 달라진 건, 여행 중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길 바랐다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산책하고, 쌀국수를 질릴 때까지 먹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다니는 20대 여행자에게 말을 걸지 않곤 못 배기는 호기심쟁이들은 날 가만두지 않았고, 관광지 상인들의 호객행위는 다소 폭력적이라 느꼈다. 때로는 기꺼이 바가지를 쓰기도 하며, 식당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각국의 교육 문제와 정치 현안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언젠가의 나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집에 있지 왜 비행기까지 타고 베트남을 가냐고 할 수도 있지만, 휴대폰 진동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화 진동, 문자 진동. 노이로제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로밍을 하지 않으면 전화나 문자는 받을 수 없다. 나에겐 명분이 필요했다. 일주일만이라도 진동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해외 정도는 가줘야 했다. 그리고 오토바이. 바람을 가르며 매연을 듬뿍 마시며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다. 매연을 가득 마시고 쌀국수 국물로 씻어내는 거야. 내가 바란 건 딱 이 정도였다.
하노이에서 닌빈, 하롱을 거쳐 하이퐁에서만 3일을 머물렀다. 하이퐁엔 LG 공장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인에게 별 관심 없는 도시의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쏙 드는 숙소를 찾았는데, 창밖에 푸른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맥주를 마시기 딱 알맞은 넓은 식탁이 있었다. 아침에 활력으로 터질 것 같은 시장 노점에서 쌀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오토바이를 타고 쇼핑몰을 둘러보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해가 쨍할 때 숙소로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저녁이 되면 다시 근처를 어슬렁거렸고, 노점에 눌러앉아 밥을 먹었다. 호숫가를 산책하고, 숙소로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완벽한 외지인으로 며칠을 살아보았다.
아빠와 함께 베트남을 여행했던 16살 무렵, 그땐 내가 해외에 있다는 게 너무도 설레고 벅찼다. 어느 정도냐 하면,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을 일기장에 묻혀왔다. 이건 베트남에서 생긴 물방울이라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커피잔에 맺힌 물방울도 좋았는데, 좋았던 것들이 하나둘 시시해지는구나. 버겁고 번거롭게 느껴지는구나. 앞으로는 또 어떤 것들이 시시해질까. 휴식인지 뭔지 모를 일주일을 보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날 기다리고 있는 이직 면접과 진동 세레나데를 대비하며. 싫었던 것들도 언젠간 시시해지길 바랐다.